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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잠[棠潛]~당장[堂長]~당장경[唐藏京]~당장종[唐莊宗]~당장평[唐莊坪]~당재[唐材]


당잠[棠潛]  노(魯)나라가 제(齊)나라에 빼앗긴 두 지역의 땅 이름이다. 당(棠)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어대현(魚臺縣)에 있고 잠(潛)은 지금의 제령시(濟寧市) 서남쪽에 있었다.

당장[堂長]  유생들 중 연장자로 선정되어 회의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자치 임원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207 학교고(學校考) 학령(學令)에 “학사(學舍)의 생도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을 당장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당장[唐莊]  당장경(唐莊京)으로 황해도 문화현(文化縣)에 속해 있으며, 단군의 도읍지 중의 하나이다. 장장평(莊莊坪)이라고도 한다. <新增東國輿之勝覽 卷42 黃海道 文化>

당장걸위승[唐將乞爲僧]  당 덕종(唐德宗) 때의 명장 이성(李晟)이 일찍이 장연상(張延賞)과 사이가 좋지 않아 그로부터 훼방을 듣게 되자, 중이 되어 해진 우거(牛車)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임금에게 청했던 데서 온 말이다. <唐書 卷一百五十四>

당장경[唐藏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당장경(唐藏京)으로 되어 있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장당경(藏唐京)으로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성호사설(星湖僿說) 권15 인사문(人事門) 화령(和寧)에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오자 단군의 후손이 당장경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당장은 바로 문화현(文化縣)에 있으며, 여기서도 오히려 단군이라 칭호했으니, 단(檀)은 국호이다.”라고 하여, 성호는 문화현이 옛날 단군의 후손이 도읍을 옮긴 곳으로 보고 있다.

당장고허죽[當仗苦虛竹]  벽에 흙을 발라 마무리하기 위한 단계로 벽 속을 가는 대나무와 큰 대나무를 가른 것을 종횡으로 엮어 채우는 것을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시 과벌목(課伐木)에 “너희가 솜씨 좋게 담장을 말끔히 세워놓고, 대나무를 고르게 엮어 속을 채워 넣었네. 황량한 산속에서는 곰들이 으르렁거리고, 새끼 가진 호랑이는 사람 살을 그리워하는데. 마을로 못 오게 할 마음을 보여주지 않은 채, 어찌 전쟁으로 죽은 이들 위해서만 울어야 하나.[藉汝跨小籬, 當仗苦虛竹. 空荒咆熊羆, 乳獸待人肉. 不示知禁情, 豈惟干戈哭.]”라고 한 데서 보이는 구절이다.

당장종[唐莊宗]  여기에서의 당(唐)은 오대(五代) 시대의 후당(後唐)을 말한다. 장종(莊宗])의 이름은 이존욱(李存勖)이며, 이극용(李克用)의 아들이다. 이극용이 죽을 적에 화살 세 대를 주면서 말하기를 “반드시 양(梁), 연(燕), 제(齊) 세 나라에게 원수를 갚으라.”라고 하였다. 장종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처음에 북쪽으로 거란(契丹)을 물리치고, 동쪽으로 연(燕)을 멸망시키고, 양(梁)나라를 멸망시키고는 그 화살을 종묘에 바치는 등 볼만한 치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뒤에는 교만방자해져서 정치를 문란하게 하다가 영인(伶人) 곽종겸(郭從謙)의 모반(謀反)을 만나 화살에 맞아 죽었다. 4년간 재위하였으며, 연호는 동광(同光)이다. <五代史 卷4>

당장종[唐莊宗]  당 장종(唐莊宗)은 당(唐)나라 때 황소(黃巢)를 격파하여 진왕(晉王)에 봉해진 이극용(李克用)의 아들인 이존욱(李存勖)을 가리킨다. 이존욱은 본래 서돌궐(西突厥) 사람으로서 아버지 이극용(李克用)을 이어 진왕(晉王)이 되었으며, 동광(同光) 원년(923)에 제(帝)라 칭하고 국호를 당(唐)이라 하였는데, 사가(史家)는 후당(後唐)이라 칭한다. 양(梁)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당(後唐)을 건국하여 낙양(洛陽)을 도읍으로 삼았다. 본래 광대의 연극과 음악을 좋아하였는데, 나중에는 총애하던 배우(俳優)들을 요직에 등용하여 정사가 어지러워졌다. 결국 재위한 지 4년 만에 자신이 발탁하여 종마직지휘사(從馬直指揮使)로 삼았던 영인(伶人) 곽종겸(郭從謙)이 모반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의 손에 죽었다. <大學衍義 卷33 誠意正心之要 戒逸欲 荒淫之戒>

당장평[唐莊坪]  황해도 문화현(文化縣)에 속해 있으며, 단군의 도읍지 중의 하나이다. 당장평(唐莊坪), 장장평(莊莊坪)이라고도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2 黃海道 文化>

당장화흔석상류[唐將靴痕石上留]  부여(扶餘) 백마강(白馬江)에 있는 조룡대(釣龍臺)의 전설을 말한다. 나당(羅唐)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당장(唐將) 소정방(蘇定方)이 백마강에 이르자 용(龍)의 조화로 갑자기 바람이 일고 비가 쏟아졌다. 그래서 백마를 미끼로 하여 그 용을 낚았는데, 그때 용의 무게에 의하여 신발 흔적이 바위에 남아 있다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十八 扶餘縣>

당재[唐材]  중국산 약재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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