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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자기[東來紫氣], 동래종법[東萊宗法], 동래주숙[東萊朱塾], 동래추포[東萊粗暴]


동래자기[東來紫氣]  노자(老子)가 서쪽으로 길을 떠나 함곡관(函谷關)에 거의 이르렀을 때,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누대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다가, 보라색 기운[紫氣]이 관문 위로 떠오는 것을 살펴보고는, 분명히 진인(眞人)이 올 것이라고 예측을 하였는데, 얼마 뒤에 과연 노자가 푸른 소를 타고 왔다는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 권63 노자열전(老子列傳)에 “노자는 도덕을 닦았는데, 그 학문은 자신을 숨겨 이름을 내지 않는 것을 힘썼다. 주나라에 오랫동안 살다가, 주나라가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마침내 그곳을 떠났다. 함곡관에 이르니, 관문을 지키는 관리인 윤희(尹喜)가 ‘선생께서 장차 숨으려 하시니, 억지로라도 저를 위해 책을 써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노자는 도덕의 뜻을 5천여 자로 쓰고 떠나가니 이것을 도덕경(道德經)이라 하며, 그가 죽은 곳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老子脩道德 其學以自隱無名爲務 居周久之 見周之衰 迺遂去 至關 關令尹喜曰 子將隱矣 彊爲我著書 於是老子 迺著書上下篇 言道德之意五千餘言而去 莫知其所終]”라고 하였다. 그리고 열선전(列仙傳)에는 “노자가 서쪽으로 갈 때에 관령 윤희가 바라보니, 자색 기운이 관에 넘실거리고 있었는데, 노자가 과연 푸른 소를 타고 지나갔다.[老子西遊, 關令尹喜望見有紫氣浮關, 而老子果乘青牛而過也.]”라는 내용이 있다. 또, 관령이외전(關令二外傳)에 의하면, 주나라 때 함곡관의 영(令)인 윤희가 누대에 올라가 사방을 관망하다가,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의 자줏빛 기운(구름)이 서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앞으로 성인이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청우(靑牛)를 탄 노자를 만나서 도덕경(道德經)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동래자기[東來紫氣]  노자(老子)가 서쪽으로 길을 떠나 함곡관(函谷關)에 거의 이르렀을 때,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누대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다가, 보라색 기운[紫氣]이 관문 위로 떠오는 것을 살펴보고는, 분명히 진인(眞人)이 올 것이라고 예측을 하였는데, 얼마 뒤에 과연 노자가 푸른 소를 타고 왔다는 자기동래(紫氣東來)의 고사가 있다. <列仙傳 上, 關令內傳, 史記 老子韓非列傳 注>

동래종법[東萊宗法]  동래(東萊)는 송나라 학자 이려(李呂)이다. 자는 빈로(濱老)이며, 서산(西山) 이욱(李郁)의 일가이다. 일가 백여 명을 모아서 함께 지내며 회종법(會宗法)을 만들어 세시로 먼 조상의 신위를 배설하여 온 종족이 모여 합사하고 음복하였는데 질서 정연하여 당시에 식자들의 칭송을 받았다. <宋元學案 卷25 龜山學案>

동래주숙[東萊朱塾]  동래(東萊)의 주숙(朱塾). 아버지의 친구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는 것으로, 주희(朱熹)가 아들 주숙(朱塾)을 자신의 친구 여조겸(呂祖謙)에게 보내어 배우게 했던 데서 나온 말이다. <宋元學案 卷49 晦翁學案下>

동래지유[東萊之喩]  동래(東萊)는 주희(朱熹)의 친구인 백공(伯恭) 여조겸(呂祖謙)의 호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지난번 여백공을 만났을 적에 그가 말하기를 ‘젊었을 때에 성질이 거칠고 사나워서 음식이 뜻에 맞지 않으면 집기를 깨뜨려 부수곤 하였다. 뒷날 오랫동안 병을 앓으면서 논어(論語) 한 책만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익숙하게 보다가 「몸소 자책함은 후하게 하고 남을 책함은 적게 한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갑자기 생각이 일시에 화평해짐을 깨달아 마침내 종신토록 갑작스러운 분노가 없게 되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기질을 변화시키는 법으로 삼을 만하다.”라고 하였다. <心經附註 卷1>

동래추포[東萊粗暴]  동래(東萊)는 여조겸(呂祖謙)의 호이다. 추포(粗暴)는 거칠고 사납다는 뜻이다. 심경부주(心經附註) 권1 징분질욕장(懲忿窒慾章)에 주희(朱熹)가 친구인 그에 대해서 “그는 젊었을 적에 성질이 거칠고 사나워서 음식이 마음에 안 들면 언짢게 여겨 집안의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곤 하였는데, 뒷날 오래도록 병을 앓으면서 단지 논어(論語) 한 책을 가지고 조석으로 익히 보다가 ‘자기를 책망함은 후하게 하고 남을 책망함은 적게 한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홀연히 마음속 생각이 한순간에 평온해짐을 깨달았으며, 그 뒤로는 죽을 때까지 분노를 폭발하는 일이 없었다고 하였다. 이는 기질을 변화시키는 법으로 삼을 만하다.[說少時性氣粗暴 嫌飮食不如意 便打破家事 後日久病 只將一冊論語 早晩閑看 至躬自厚而薄責於人 忽然覺得意思一時平了 遂終身無暴怒 此可爲變化氣質法]”라고 평한 말이 실려 있다.

동래형제[東萊兄弟]  송(宋)나라 때의 학자인 여조겸(呂祖謙)·여조검(呂祖儉) 형제를 말한다. 여조겸은 자는 백공(伯恭), 호는 동래이고, 여조검은 자는 자약(子約), 호는 대우(大愚)이다. 이 두 사람이 사마천(司馬遷)의 학문을 종주로 삼아서 “한(漢)나라 유자들이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가 이에 대하여 반박하여 변론한 내용이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22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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