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동림사[東林寺], 동림상송[東林相送], 동림성[東林城], 동림아지[東林雅志]


동림사[桐林寺]  아산군지(牙山郡誌)에 의하면, 동림사는 신라 때 창건되어 조선 시대까지 명맥을 유지하다가 폐사되었다고 한다. 1942년에 동림사 터에 법당을 중창하여, 관음사로 개명하였다.

동림사[東林寺]  중국 여산(廬山)에 있는 절 이름이다. 진(晉)나라 태원(太元) 중에 고승(高僧) 혜원법사(惠遠法師)가 강주자사(江州刺史)로 있던 환이(桓伊)의 도움으로 여산(廬山) 동쪽에 동림사(東林寺)를 창건했다. 지금도 여산의 고적 중의 하나이다. 이 동림사에서 혜원은 혜영(惠永)·혜지(惠持)·유유민(劉遺民)·뇌차종(雷次宗) 등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여 불도에 정진했다.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동림사(東林寺)에 있으면서 손님을 보낼 때 호계(虎溪)를 건너지 않았는데 여기를 지나기만 하면 문득 호랑이가 울었다. 하루는 도연명(陶淵明)·육수정(陸修靜)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넘자 호랑이가 우니 세 사람은 크게 웃고 헤어졌다는 고사가 있다.

동림사[東林寺]  동림사는 여산(廬山)에 있는 사찰로, 동진(東晉) 때 정토종(淨土宗)의 시조인 혜원(慧遠)이 창립한 절이다.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유유민(劉遺民), 뇌차종(雷次宗), 종병(宗炳) 등 당시의 고사일인(高士逸人) 18명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라는 모임을 이곳에서 결성하고 함께 모여 노닐며 동림십팔현(東林十八賢)이라고 칭하였다. <蓮社高賢傳 慧遠法師>

동림상송[東林相送]  동림(東林)은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慧遠)이 창건한 동림사(東林寺)로 여산(驪山)에 있다. 이 절 앞에 호계(虎溪)라는 시내가 있었는데 여기를 지나기만 하면 호랑이가 울었다고 한다. 혜원이 청정한 수행을 위해 손님을 배웅할 때 호계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였는데, 한번은 이곳을 방문한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을 배웅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 시내를 건너버렸고, 이때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자 호계를 넘은 것을 알고는 세 사람이 모두 큰소리로 웃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蓮社高賢傳>

동림성[東林城]  선천(宣川)의 서북쪽에 있는 산성이다.

동림승패[東林勝敗]  사화(士禍)나 당쟁(黨爭)을 말한다. 송(宋)의 양시(楊時)가 무석(無錫)에다 동림서원(東林書院)을 세웠는데, 명대(明代)에 와서 고헌성(顧憲成) 등이 그것을 중수하고 학문을 강마하면서 혹은 국정을 논평하기도 하고 인물을 품평하기도 하여 당시 사대부들이 많은 향응을 하였고 그리하여 드디어 동림당(東林黨)이 형성되었다. 그 후 위충현(魏忠賢)이 득세하자 그간 동림당을 시기하고 있던 자들이 그것을 기회로 중상모략을 하여 당옥(黨獄)을 일으켜 거의 망타가 되었다가 충현이 복주(伏誅)되고 나서 공론이 다시 밝아졌다고 함. <明史 顧憲成傳>

동림아지[東林雅志]  동진(東晉)의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 혜원(慧遠)의 제자 법령(法領)이 차구반국(遮拘盤國)에 가서 화엄의 전분(前分) 3만 6천 게송을 구해 왔고, 불현 삼장(佛賢三藏)이 화엄경(華嚴經)을 번역할 적에 남림사(南林寺)의 법업(法業)이 구술한 내용을 붓으로 적어 50권을 이루었다고 하면서, 동림과 남림이 협조한 인연을 언급한 대목이 고운의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나온다. 불현(佛賢)은 각현(覺賢) 혹은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라고도 한다. 아지(雅志)는 경전을 완전히 구비하여 번역하려 했던 혜원의 평소의 뜻이라는 말이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