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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림강학[東林講學], 동림남림[東林南林], 동림당고[東林黨錮], 동림당인[東林黨人]


동림강학[東林講學]  송 나라 양시(楊時)가 무석(無錫)에 동림서원(東林書院)을 건립하여 강학하였는데, 명(明) 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고헌성(顧憲成)이 그의 아우 고윤성(顧允成)과 함께 재건하여 동지인 고반룡(高攀龍) 등과 강학을 하였다. 강습하는 중에 조정의 정치를 풍자하기도 하며 시대의 인물을 평가하기도 하니, 조사(朝士)들도 멀리서 향응하였다. <明史 卷231 顧憲成列傳> 청 나라 때 진정(陳鼎)이 찬한 동림열전(東林列傳)에 기록된 명단이 200여 명이다.

동림남림[東林南林]  동진(東晉)의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 혜원(慧遠)의 제자 법령(法領)이 차구반국(遮拘盤國)에 가서 화엄의 전분(前分) 3만 6천 게송을 구해 왔고, 불현삼장(佛賢三藏)이 화엄경(華嚴經)을 번역할 적에 남림사(南林寺)의 법업(法業)이 구술한 내용을 붓으로 적어 50권을 이루었다.

동림당[東林黨]  명(明) 신종(明神宗) 때 태자를 세우는 문제로 좌천을 당한 고헌성(顧憲成)·고반룡(高樊龍)이 주동이 되어 조직된 당파이다. 송(宋) 나라 학자 양시(楊時)를 모신 동림서원(東林書院)을 근거지로 재야(在野)의 학자들을 규합하여 시정(時政)을 논한 것이 시초가 되어 끝내는 조정의 관리까지 모여 대정당이 되었고, 이에 대항하는 반대파와의 논쟁으로 명나라가 멸망하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明史紀事本末 卷66 東林黨議>

동림당[東林黨]  명 신종(明神宗) 만력(萬曆) 연간에 이부 낭중(吏部郞中) 고헌성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동림서원(東林書院)을 중수하고 고반룡(高樊龍), 전일본(錢一本) 등 동지들과 함께 이곳에서 강학하며 조정의 정사를 비평하고 의논하였는데, 그때 참여했던 사람들과 이에 동조했던 사람들을 반대편에서 통틀어 일컫던 말이다. 동림서원은 원래 송나라 양시(楊時)가 강학하던 곳으로, 원나라 때에는 사찰로 변하였는데,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무석시(無錫市)에 있다. 동림학파의 명성이 점점 커지자 적대 세력이 당으로 몰아 견제하였는데, 희종(熹宗) 천계(天啓) 연간에 환관 위충현(魏忠賢)이 발호하여 전권을 행사하매, 동림의 제인이 이에 반대하며 끝까지 항거하다가 모두 혹독한 박해를 받았으며, 그 뒤에 숭정(崇禎)이 즉위함에 미쳐 위충현이 실세하여 자진하면서 당금(黨禁)이 비로소 풀렸다. <明史 顧憲成列傳> <明史紀事本末 東林黨議>

동림당[東林黨]  명(明) 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무석(無錫)의 고헌성(顧憲成)이 고반룡(高攀龍)과 함께 송(宋) 나라 양시(楊時)의 동림서원(東林書院)을 중수하고 학문을 강론하니, 그 성세(聲勢)가 매우 떨쳤다. 위충현(魏忠賢)이 정사를 어지럽힘에 미쳐 이를 통렬히 배척했는데, 다만 동제(同儕) 가운데에 간사한 자가 혼잡하였으므로 소인들이 틈을 엿보아 헐뜯으니, 당화(黨禍)가 크게 일어나 거의 죽고 내쫓겼다. 숭정(崇禎) 초두에 위충현이 극형을 당한 후 공론이 비로소 밝아지고 동림당이 다시 떨치게 되었다.

동림당[東林黨]  명(明)나라 신종(神宗) 때, 고헌성(顧憲成) 등이 송(宋)나라 때의 학자인 양시(楊時)를 모신 동림서원(東林書院)을 중수하고 학문을 강론하였는데, 여러 명사(名士)들이 여기에서 시국에 대한 비판과 토론을 전개하였다. 이들을 일컬어 동림당이라 하였다. 당시 환관으로 세력을 잡고 있던 위충현(魏忠賢)을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들이 이들을 꺼려하여 당옥(黨獄)을 일으켜 탄압하였다. 숭정제 초년에 위충현이 복주되어 동림당이 다시 세력을 잡았으나 여진족의 침입 앞에서도 반대 세력과 끊임없는 당쟁을 전개하여 명나라가 멸망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동림당고[東林黨錮]  명 신종(明神宗) 때 환관 위충현(魏忠賢)이 동림서원(東林書院)에서 당시 집권층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던 사류(士流) 고헌성(顧憲成) 일파를 사당(邪黨)으로 몰아 무고(誣告)하여 모두 죽인 것을 동림당고(東林黨錮)라 한다. 그 후 의종(毅宗) 17년 3월 명 나라가 청에게 패망하자 의종은 만수산(萬壽山)의 수황전(壽皇殿)에서 자살하였다. <明史 卷24 莊烈帝紀, 卷305 魏忠賢傳, 王成恩傳, 卷231 顧憲成傳>

동림당인[東林黨人]  명 신종(明神宗) 때 태자를 세우는 문제로 좌천을 당한 고헌성(顧憲成)·고번룡(高樊龍)이 주동이 되어 조직된 당파. 동림서원(東林書院)을 근거지로 재야(在野)의 학자나 불평 분자를 규합, 시정(時政)을 논한 것이 시초가 되어 끝내는 조정의 관리까지 모여 대정당이 되었고, 이에 대항하는 반대파와의 논쟁으로 명 나라가 멸망하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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