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실기지[君實器之]~군실무당[君實無黨]~군실상환[君實常患]

군실귀와낙포[君實歸臥洛浦]  군실은 송나라 때의 명상(名相)으로 이름을 떨친 사마광(司馬光)의 자이다. 사마광이 단명전 학사(端明殿學士)로서 영흥군(永興軍)을 맡고 있던 중 선무사(宣撫使)의 명령에 항거하여 군민(軍民)들을 안정시켰으나, 이로 인해 허주지사(許州知事)로 좌천되자, 서경(西京)의 어사대(御史臺)를 맡겠다고 자청하여 낙포(洛浦)로 물러가 있으면서 논사(論事)하는 것을 일절 끊은 채 지냈다. 그 뒤에 황제의 조서를 보고는 다시 조정으로 나와서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선정(善政)을 펼쳤으므로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진재상(眞宰相)으로 여겼으며, 시골 사람들까지 모두 ‘사마상공(司馬相公)’이라고 부르면서 존경하였다고 한다. <宋史 卷336 司馬光列傳>

군실기지[君實器之]  군실(君實)은 송(宋)나라의 사마광(司馬光)이고, 기지(器之)는 유안세(劉安世)이다. 유안세가 사마광에게서 학문을 배웠는데, 사마광이 재상으로 조정에 들어가서 그를 천거하여 비서성 정자(秘書省正字)로 임명하였다. 사마광이 유안세에게 “내가 그대를 천거한 이유를 아는가?” 하니, 유안세가 “제가 공에게 학문을 배운 지 오래된 때문일 것입니다.” 하였는데, 사마광이 “아니라네. 내가 벼슬이 없을 때는 그대가 사시사철 문안 편지를 보내오다가, 내가 재상으로 임명된 후에는 그대만 유독 편지 한 통 보내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네.”라고 한 고사가 있다. <宋史 卷344 劉安世傳> <山西通志 卷234>

군실독락원[君實獨樂園]  혼자서 전원생활을 즐겼다는 뜻이다. 군실은 송나라 때의 명상(名相) 사마광(司馬光)의 자이고, 독락원은 낙양(洛陽)의 남쪽 교외에 있는 조그마한 전원(田園) 이름으로, 사마광이 은거해 있던 곳이다. <宋史 卷336 司馬光列傳>

군실무당[君實無黨]  군실은 송나라 명신 사마광(司馬光)의 자이다. 고사비(古事比) 붕당(朋黨)에, 송나라 철종 때 낙당(洛黨), 촉당(蜀黨), 삭당(朔黨) 등 붕당이 한창 성했는데, 오직 여대방(呂大防), 범조우(范祖禹), 사마광만이 당을 세우지 않았다고 하였다.

군실상환[君實常患]  군실(君實)은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자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군실이 항상 생각이 어지러움을 걱정하여 더러는 밤중에 일어나 아침까지 자지 못했다고 하니 참으로 스스로 힘썼다고 하겠다.……그러나 도리어 한 꾸러미의 구슬을 세는 것만 못하다. 밤이면 몸을 편히 하고 잠이 오면 눈을 감을 것이지 괴롭게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마음으로 주를 삼지 못하기 때문이다.[君實常患思慮紛亂, 有時中夜而作, 達朝不寐, 可謂良自苦.……却不如與一串數珠之愈也. 夜以安身, 睡則合眼, 不知苦苦思量箇甚. 只是不以心爲主.]”라고 하였다. <心經附註 卷3>

군실일성[君實一誠]  군실(君實)은 송(宋)나라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사마광(司馬光)의 자이다. 호는 우부(迂夫), 우수(迂叟), 또는 속수선생(涑水先生)이라고도 한다. 유안세(劉安世)가 스승인 사마광에게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닦는 요체로서 죽을 때까지 행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사마광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성(誠)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小學 卷6 善行>

군실재락[君實在洛]  군실(君實)은 송 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자(字)이다. 사마광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살면서 국자감(國子監) 곁에 땅을 얻어 독락원(獨樂園)을 짓고, 독락원기(獨樂園記)를 지어 스스로 한가로이 물러나 지내는 즐거움을 표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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