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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망위가모[詭妄爲嘉謀]~궤목[机木]~궤물[軌物]~궤물범세[軌物範世]


궤망위가모[詭妄爲嘉謀]  거짓말 하는 것을 아름다운 계책으로 여김. 육지(陸贄)가 상서(上書)하여 배연령(裴延齡)의 간사함을 지적하여 “거짓말 하는 것을 아름다운 계책으로 여기며, 가렴주구하여 원망을 받아들이는 것을 자기 일신을 돌아보지 않는 충절로 여기고, 아첨하고 참소하는 것을 충절을 다한다고 여긴다.[詭妄爲嘉謀 掊克斂怨爲匪躬 靖譖服讒爲盡節]”라고 한 데서 보인다. <通鑑節要>

궤목[机木]  산해경(山海經) 북산경(北山經)에 보이는 나무 이름인데, 그 주(註)에 “느릅나무 비슷한데 태워서 벼논에 거름으로 쓸 수 있다.[似楡 可燒以糞稻田]”라고 하였다. 내지덕(來知德)이 주역(周易) 환괘(渙卦) 구이(九二)의 “궤로 달려간다.[奔其机]”라는 효사(爻辭)에 대해 “궤(机)는 나무이다. 촉중(蜀中)에서 생산되는데 느릅나무와 비슷하며 그것을 태워서 벼논에 거름으로 쓸 수 있다. 산해경에 ‘대요(大堯) 위에 송백(松栢)이 많고 궤목(机木)이 많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 궤(机)는 구오(九五)를 가리킨다.[机木也 出蜀中 似楡 可燒以糞稻田 山海經云 大堯之上多松栢多机木是也 …… 指五也]”라고 해설한 내용이 그가 지은 주역집주(周易集註) 권12에 나온다.

궤문[饋問]  물품을 보내고 문안하다. 선물하다. 선사하다. 드리다. ‘餽問(궤문)’으로도 쓰는데 ‘餽(궤)’는 ‘饋(궤)’와 같다. 진(晉)의 주처(周處)가 쓴 풍토기(風土記)에 “촉 지방의 풍속에 세밑에 서로 선물을 보내는 것을 일러 ‘궤세’라고 한다.[蜀之風俗, 歲晩相與饋問, 謂之饋歲.]”라고 하였다.

궤물[軌物]  궤량(軌量)이 될 만한 것을 궤(軌)라 하고, 물채(物采)가 될 만한 것을 물(物)이라 한다. 임금의 일은 백성들이 궤량(軌量)과 물채(物采)를 따르도록 인도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동래박의(東萊博議) 권1 장희백간관어(臧僖伯諫觀魚)에 “임금은 백성이 궤(軌)와 물(物)을 따르도록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대사(大事)를 강습하여 궤량(軌量)을 바로잡는 것을 궤(軌)라 하고, 재료를 취(取)하여 물채(物采)를 드러내는 것을 물(物)이라 하고, 궤(軌)와 물(物)에 맞지 않는 것을 난정(亂政)이라 하니, 난정(亂政)을 자주 행하는 것이 패망(敗亡)의 원인입니다.[君將納民於軌物者也. 故講事以度軌, 量謂之軌. 取材以章物, 采謂之物, 不軌不物謂之亂政, 亂政亟行所以敗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궤물범세[軌物範世]  수레에는 ‘바퀴의 궤적[軌轍]’이 있고, 기물에는 ‘본이 되는 틀[模範]’이 있으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거동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안씨가훈(顔氏家訓) 서치(序致)에 “내가 이제 다시금 이런 책을 짓는 까닭은 감히 사물에 법도(法度)를 세우고 세상에 모범(模範)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집안을 바로잡고 자손을 이끌고 타이르는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무릇 똑같이 말을 하더라도 친한 사람의 말은 미덥고, 똑같이 명령을 하더라도 따르던 사람의 명령은 행하기 마련이다. 아이의 심한 장난을 그치도록 하는 데에는 스승의 훈계보다 평소 돌보던 여종의 이끎이 낫고, 평범한 사람들의 형제간 다툼을 그치게 하는 데에는 요순(堯舜)의 도리보다 아내의 달램이 낫다. 이 책이 너희들에게 여종이나 아내보다 지혜로운 것으로 미덥게 여겨지기를 바란다.[吾今所以復爲此者, 非敢軌物範世也, 業以整齊門內, 提撕子孫. 夫同言而信, 信其所親 ; 同命而行, 行其所服. 禁童子之暴謔, 則師友之誡, 不如傅婢之指揮 ; 止凡人之鬭鬩, 則堯・舜之道, 不如寡妻之誨諭. 吾望此書爲汝曹之所信, 猶賢於傅婢寡妻耳.]”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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