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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선생[鬼谷先生]~귀곡자[鬼谷子]~귀곡천계[貴鵠賤鷄]


귀곡[鬼谷]  귀곡은 하남(河南) 등봉현(登封縣)에 있는 골짜기로서 육국시대(六國時代) 종횡가(縱橫家) 소진(蘇秦)・장의(張儀)의 스승 귀곡선생(鬼谷先生)이 살던 곳이다.

귀곡[鬼谷]  전국(戰國) 때, 신선(神仙)이 되었다는 왕후(王詡)의 별호이다. 청계(淸溪)의 귀곡(鬼谷)에 살았으므로 귀곡선생(鬼谷先生)이라 하는데, 곽박(郭璞)의 유선시(遊仙詩)에 “청계의 깊이가 천 길이 되는데, 그 가운데 도사가 살고 있다네.[淸溪千餘仞 中有一道士]”라고 하였다. <史記 卷六十九>

귀곡선생[鬼谷先生]  전국 때 제(齊)나라의 출신의 종횡가(縱橫家)로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일설에는 초나라 출신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하남성 방성(方城) 부근의 영천(穎川) 양성(陽城)의 귀곡(鬼谷)이라는 곳에 은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귀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였다. 귀곡(鬼谷)은 일설에는 지금의 섬서성 경양(涇陽)의 부풍(扶風)의 지양(池陽) 부근이라고도 한다. 그의 사상은 황노(黃老)의 심술(心術)에서 출발했다. 세상의 일을 논하여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우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반응(反應) 단계를 거쳐, 자기의 마음으로써 미루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췌마(揣摩)에 이르러, 마침내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비합(俾闔)의 술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함으로 해서 전국시대 유세가들의 조종(祖宗)이 되었다.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은 그의 제자이며 귀곡자(鬼谷子) 3편이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실려 있으나 일설에는 소진이 저술하고 신비감을 보태기 위해 그의 이름을 빌린 것이라고도 한다.

귀곡자[鬼谷子]  귀곡자(鬼谷子)는 전국(戰國) 때 소진(蘇秦)・장의(張儀)의 스승으로, 종횡가(縱橫家)의 창시자이다. 부풍(扶風) 지양(池陽)과 영천(潁川) 양성(陽城)에 귀곡(鬼谷)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가 사는 곳의 지명에 따라 귀곡자(鬼谷子), 혹은 귀곡선생(鬼谷先生)이라 불렀다고 한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 자부(子部) 종횡가(縱橫家) 서목에 귀곡자(鬼谷子) 3권이 있는데, 황보밀(皇甫謐)이 주를 단 것과 악일(樂壹)이 주를 단 것이 있다고 하였다. 당(唐)나라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에는 “악일(樂壹)의 귀곡자(鬼谷子) 주에 ‘소진(蘇秦)이 자기의 학술을 신비롭게 하기 위해 귀곡(鬼谷)의 이름을 빌렸다.’라고 했다.” 하였다. 유종원(柳宗元)은 그의 글 변귀곡자(辯鬼谷子)에서 이 책은 후세 사람의 위작으로, 내용이 건전하지 못하고 황당하여 믿을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귀곡자[鬼谷子]  중국 전국 시대 종횡가(縱橫家)의 시조로 불리는 왕후(王詡)를 이른다. 저서로 귀곡자(鬼谷子)와 본경음부칠술(本經陰符七術)이 있는데, 전자는 권모(權謀)와 변론 기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종횡가의 주요 전적이고, 후자는 정신 함양의 방법을 서술한 저작으로 도교(道敎)의 중요한 서적이다.

귀곡천계[貴鵠賤鷄]  따오기(혹은 고니)는 귀하게 여기고 닭을 천하게 여긴다는 뜻에서, 먼 데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데 것을 천하게 여기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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