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원[棘院] 고시장(考試場). 과거장(科擧場)에 가시 울타리를 하여 사람의 출입을 금하였으므로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일설에는 주(周) 나라 때 회나무와 가시나무를 정부(政府)의 좌우(左右)에 심었다 하여, 정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한다.
극원[棘垣] 과거 시험장. 극위(棘圍)와 같은 뜻으로, 옛날 과거장(科擧場)에 사방으로 가시나무[棘]를 둘렀던 데서, 즉 과거장을 가리킨다.
극원수[郤元帥] 춘추 시대 진(晉)나라 대장(大將) 극곡(郤縠)을 가리키는데, 보통 유장(儒將)의 대명사로 쓰인다. 진 문공(晉文公) 4년에 군대를 피려(被廬)에 집결시켜 삼군(三軍)을 편성하고 나서 원수(元帥)를 뽑을 적에, 시(詩)・서(書)・예(禮)・악(樂)에 능하다는 조최(趙衰)의 천거에 따라 문공이 그를 중군(中軍)의 대장에 임명한 고사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7년 조에 나온다.
극위[棘圍] 경비가 삼엄한 과거 시험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극원(棘院)이라고도 한다.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 낙방한 응시자들의 난동을 방지하기 위하여 가시나무 울타리를 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舊五代史 卷127 周書 和凝列傳>
극위[棘闈] 경비가 삼엄한 과거(科擧) 시험장을 말한다. 옛날 과장(科場) 주위에 가시나무를 둘렀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通典 選擧>
극위[棘闈] 극성(棘城)에 들어가는 성문. 극성(棘城)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영성현(永城縣) 남쪽에 있던 초(楚)나라의 땅 이름이다. 闈(위)는 門(문)이다.
극위[棘闈] 극위는 당(唐) 나라 때 고시장(考試場)에 외인(外人)을 금지하기 위하여 가시나무를 쌓았던 데서 생긴 이름이다.
극위[戟衛] 창을 들고 순시하는 군사이다.
극유궐유[克綏厥猷] 극수궐유(克綏厥猷). 서경(書經) 탕고(湯誥)에 나오는 말로, 능히 백성을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道)에 편안히 머물게 한다는 뜻이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탕고(湯誥)에 “왕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너희 만방(萬方)의 무리들아. 나 한 사람의 가르침을 분명히 들어라. 훌륭하신 상제(上帝)가 하민(下民)들에게 충(衷)을 내려 주어 순히 하여 떳떳한 성(性)을 소유했으니, 그 도(道)에 편안할 수 있는 이는 군주인 것이다.’[王曰 嗟爾萬方有衆 明聽予一人誥 惟皇上帝降衷于下民 若有恒性 克綏厥猷 惟后]”라고 하였다.
극유인[屐遊人]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명산을 유람할 적에 산을 오를 때에는 나막신[屐]의 앞굽을 떼어 버리고 산을 내려올 때에는 뒷굽을 떼어 걷기에 편리하도록 했다는 고사가 있다. <宋書 卷67 謝靈運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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