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수[跟隨] 뒤따르다, 동행하다, 따라가다.
근수[跟隨] 벼슬아치를 따라다니는 관아의 하례(下隷)이다. 원래 지방에서 서울로 선상 입역(選上立役)하는 공노(公奴) 가운데 종친(宗親)이나 각 관사 소속의 관원에게 사령(使令)의 명목으로 배당되어 관원이 대궐을 출입할 때, 또는 지방에 출장을 갈 때 수종(隨從)하며 시중드는 일을 담당하였던 노자(奴子)이다. 근수는 관원 개인에게 지급되었기 때문에 사노(私奴)와 같이 취급되어 흔히 사역(私役)에 동원되기도 하였으며, 당상관이나 사헌부・사간원의 관원이 군율 등을 어겼을 때 이들 관원 대신 수감되기도 하였다. 근수노자(根隨奴子)・근수노(根隨奴)의 준말이며, 구종(驅從), 별배(別陪)라고도 하였다.
근수[芹水] 성균관을 뜻한다. 시경(詩經) 반수(泮水)에 “즐거운 반수에서 잠깐 미나리를 캐노라.[思樂泮水 薄采其芹]”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근수[謹守] 조심하고 정성껏 지킴. 삼가 지킴. 조심스럽고 정중한 태도로 지킴. 엄수(嚴守)하다.
근수관청로[芹水觀靑輅] 성균관에서 세자의 행차를 보았다는 뜻이다. 근수(芹水)는 성균관(成均館)을 달리 일컫는 말이고 노(輅)는 천자가 타는 수레인데 청로(靑輅)라 하였으므로 세자가 탄 수레이다. 시경(詩經) 반수(泮水)에 “즐거운 반수에서 잠깐 그 미나리를 캐노라. 노나라 제후께서 이르시니 그 깃발을 보겠구나.[思樂泮水, 薄采其芹. 魯侯戾止, 言觀其旂.]”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근수누대선득월[近水樓臺先得月] 연못과 누대가 가까이 있어야 먼저 달을 완상(翫賞:본다는 뜻)할 수 있다 함이니, 세력있는 사람과 연고가 있어야 일찍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근수렴롱탐차추[近水簾櫳探借秋] 육유(陸游)의 하일호상(夏日湖上) 시에 “바람 맞은 베개와 자리는 더위를 업신여기고, 물 가까운 발 친 창은 가을 기운을 미리 빌리네.[迎風枕簟平欺暑 近水簾櫳探借秋]”라고 하였다.
근수삼자[謹守三者] 손숙오(孫叔敖)는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현재상(賢宰相)이다. 그가 영윤(令尹)에 임명되었을 때에 사람들이 모두 축하하였으나 노부(老父) 한 사람만은 서글퍼하며 경계하였는데, 손숙오가 재배하며 가르침을 청하자 그 노부가 “지위가 높아졌으면 뜻은 더욱 낮출 것이요, 관직이 커졌으면 마음은 더욱 작게 가질 것이요, 녹봉이 후해졌으면 조심해서 취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이 세 가지를 충실히 지킨다면, 초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位已高而意益下 官已大而心益小 祿已厚而愼不取 君謹守此三者 足以治楚]”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9 循吏列傳>
근수이물실 시위반기진[謹守而勿失 是謂反其眞] 삼가 지켜서 잃어버리지 않는 것, 이것을 일러 천진(天眞)의 본성으로 돌아간다고 함. 장자(莊子) 제17편 추수(秋水)에 “하백(河伯)이 물었다. ‘무엇을 天[자연・천성]이라고 하고 무엇을 人[인위]이라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북해신(北海神) 약(若)이 말했다. ‘소와 말은 다리가 네 개이다. 이것을 天이라고 한다. 말의 목에 고삐를 매고 소의 코에 코뚜레를 끼우는 것을 人이라고 한다.’ 따라서 ‘人[인위]으로써 天[자연]을 없애서는 안 되고, 故[인위적 지혜]로써 命[자연 순리, 천명]을 망쳐서도 안 되며, 得[자연에서 얻은 것]으로써 名[사회적 명성]을 위해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이같이 자연에서 받은 것을 삼가 지켜서 잃지 않는 것을 자신의 천진(天眞)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河伯曰 何謂天 何謂人 北海若曰 牛馬四足 是謂天 落馬首穿牛鼻 是謂人 故曰 無以人滅天 無以故滅命 無以得殉名 謹守而勿失 是謂反其真]”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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