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근[禁近] 임금 측근에 있는 벼슬. 금중(禁中)의 측근(側近)이라는 뜻으로, 한림원(翰林院)이나 궁중에 있는 문학(文學) 근시(近侍)의 신하를 지칭한다. 신당서(新唐書) 127권 장가정전(張嘉貞傳)에 “신은 초야의 사람으로 조정의 위의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신에 대한 말을 지나치게 들으시고 금근에 인대(引對)하게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금근[金根] 금근거(金根車)의 준말로,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천자의 법가(法駕)를 가리킨다. 한서(漢書) 여복지(輿服志)에 “은(殷)나라 서산거(瑞山車)는 금근의 빛이다.” 하였으며, 주에 “금으로 꾸며서다.” 하였다.
금근[金根]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아들 창(昶)이 금근차(金根車)로 잘못 읽은 고사에서 나온 말로, 문자의 오용 또는 오독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퇴지(韓退之)의 아들 창(昶)이 암렬(暗劣)하기 그지없었는데, 집현교리(集賢校理)로 있을 때 천자가 타고 다니는 금근거(金根車)의 고사를 알지 못한 나머지, 글자가 잘못되었다고 둘러대며 근(根)을 은(銀)으로 고쳤던 일화가 있다. <尙書故實>
금근거[金根車] 글자를 경솔하게 잘못 고치는 것을 말한다. 금근거는 황제가 타는 황금으로 장식한 수레이다. 한퇴지(韓退之)의 아들 한창(韓昶)이 우둔하고 용렬하였는데, 집현전(集賢殿)의 교리(校理)가 되었다. 사전(史傳)에 ‘금근거(金根車)’란 말이 있자 한창은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알고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반드시 금은거(金銀車)일 것이다.” 하고는 ‘근(根)’ 자를 모두 ‘은(銀)’ 자로 고쳤다고 한다. <尙書故實>
금근거[金根車] 금근거는 황금으로 장식한 수레로, 황제가 타는 것이다. 진 시황(秦始皇)이 처음으로 은로(殷輅)의 제도를 취하여 만든 천자의 승여(乘輿)이다. 당 나라 대종(代宗)의 딸 조국공주(趙國公主)가 위박(魏博)으로 시집가는데, 덕종(德宗)이 전송하다가 수레가 좋지 못한 것을 보고 금근거를 타도록 하였다.
금근거[金根車] 진시황이 은(殷)나라 제도를 본받아 금으로 장식한 수레 이름이다. 원래 천자(天子)의 수레였으나 한당(漢唐) 이후 태황태후(太皇太后), 황태후, 황후가 모두 탈 수 있었다. 한유(韓愈)의 아들 창(昶)이 금근거(金根車)를 금근거(金銀車)로 잘못 읽어 ‘글자를 잘못 읽거나 씀’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이고, 임금의 죽음을 ‘금근거가 늦게 나옴’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금근복렵[金根伏獵] 문자(文字)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을 말한다. 금근거(金根車)는 진 시황(秦始皇)이 처음으로 은로(殷輅)의 제도를 취하여 만든 천자의 승여(乘輿)인데, 한유의 아들 창(昶)은 본디 우둔했던 탓으로, 그가 일찍이 집현교리(集賢校理)로 있을 때 사전(史傳)에 있는 금근거를 잘못된 것이라 하여 근(根) 자를 은(銀) 자로 고쳤던 데서 온 말이다. <尙書故實>. 또, 당(唐)나라 호부 시랑(戶部侍郞) 소경(蕭炅)이 예기(禮記)에 나오는 증(蒸)・상(嘗)・복(伏)・납(臘)이라는 사계절 제사의 이름을 읽을 때 그 뜻을 알지 못한 나머지 복렵(伏獵)이라고 읽자, 장구령(張九齡)이 이를 조롱하여 복렵시랑(伏獵侍郞)이라고 했다 한다. <舊唐書 嚴挺之傳>
금근불식[金根不識] 문자에 어두운 것을 비유한다. 본디 금근거(金根車)는 천자의 수레인데, 한유(韓愈)의 아들 한창(韓昶)이 이를 모르고 금은거(金銀車)라고 읽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弇州四部稿 卷160 宛委餘編>
금근오[金根誤] 당(唐)나라 이작(李綽)이 지은 상서고실(尙書故實)에 의하면, 한유(韓愈)의 아들 한창(韓昶)이 집현 교리가 되었을 때 사서(史書)에 나오는 금근거(金根車)를 금은거(金銀車)로 잘못 읽었다는 일에서 유래하여, 문자를 잘못 쓰거나 또는 잘못 읽은 것을 비유한다.
금금[嶔嶔] 입 벌려 하품함. 입을 크게 벌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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