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두[金斗] 금두는 금인(金印)을 가리킨다.
금두[金斗] 쇠로 만든 국자.
금두전[錦頭纏] 기녀의 가무 값으로 주는 비단이나 돈을 말한다.
금득[衿得] 깃득. 분재(分財)하여 자기 몫을 받음. 재산을 나누어 가진다는 의미의 이두(吏讀).
금등[金藤] 능소화(凌霄花)를 말한다.
금등[金縢] 금등은 금으로 봉함(封緘)한다는 뜻으로, 서경(書經)의 편명이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병들어 위독했을 때, 주공(周公)이 자신이 재주가 많아서 신령의 사역(使役)이 될 만하니, 무왕 대신 자기를 죽게 해 달라고 선왕(先王)께 기도하고, 그 기도한 글을 금으로 봉함한 궤에 넣어 두었는데, 그다음 날에 무왕의 병이 쾌유되었다. 후에 무왕이 죽고 주공이 섭정을 할 때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주공을 모함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의심을 받자 교외에 나가 있었는데, 마침 태풍이 불어 벼가 쓰러지고 나무가 뽑히는 변고가 발생하니, 성왕(成王)이 금등의 글을 열어 보고는 주공을 의심했던 마음을 반성하고 다시 불러들였다는 내용이다.
금등[金縢] 금속 끈으로 묶은 상자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해에 중병이 걸렸다. 이에 주공(周公)은 책서(冊書)를 만들어 선왕의 영령에게 고하면서 자신이 무왕을 대신해 죽기를 바라고, 아울러 금등에 그 책서를 보관했다. 무왕이 죽은 뒤에 어린 성왕(成王)이 즉위하자, 주공이 섭정을 했다. 그러자 관숙(管叔) 등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공은 유언비어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정(東征)하여 반란을 평정하니, 성왕이 시기하였다. 뒤에 천재(天災)를 만나자 성왕 등 군신은 금속 끈으로 묶은 궤를 열어보고 비로소 주공의 충심(忠心)을 알았다. 이에 성왕이 크게 감동하고 의심은 풀렸다. <書經 金縢>
금등[金縢] 쇠사슬로 봉함했다는 뜻으로, 서경(書經)의 편명(篇名)이기도 하다. 서경(書經) 금등(金縢)에 의하면, 무왕(武王)이 일찍이 병들어 위독했을 때, 주공(周公)이 무왕 대신 자기를 죽게 해 달라고 선왕(先王)께 기도할 적에 먼저 남향으로 세 단(壇)을 만들고, 세 단의 남쪽에 또 단 하나를 만들어 주공이 여기에 북향하고 서서 손수 규(珪)를 잡고 태왕(太王), 왕계(王季), 문왕(文王)에게 기도를 마친 다음, 세 거북으로 점을 쳐 보니 길하여, 바로 그다음 날에 무왕의 병이 나았던바, 사관(史官)이 그 축책(祝冊)을 쇠사슬로 동여맨 궤(匱)에 넣어 두었던 데서 이 글의 편명을 금등이라 했다고 한다. 그 축문은 상서(尙書) 주서(周書)에 수록되어 있다.
금등대목[金縢大木] 주(周) 나라 성왕(成王) 때에 풍우로 말미암아 큰 나무가 뽑힌 것을 말한다. 서경(書經) 주서 금등(金縢)에 “가을에 크게 곡식이 여물었는데, 거둬들이기 전에 하늘에서 크게 벼락과 번개가 치며 바람이 불어, 곡식이 모두 넘어지고 나무가 뽑혔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금등우기혼[金縢雨氣昏] 금등은 금으로 봉인(封印)한 궤(櫃)를 말한다. 성왕(成王)이 주공의 치효(鴟鴞) 시를 보고 주공에 대한 의심을 조금은 풀었으나 완전히 다 풀지는 못했다가, 그해 가을 곡식이 다 여물었을 때, 갑자기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쳐서 벼가 다 쓰러지고 큰 나무가 뽑히는 변이 일어나자, 성왕이 대신(大臣)들과 함께 주공이 일찍이 봉인해 놓은 금등을 열어본 결과, 앞서 무왕(武王)이 병들어 위독했을 때 주공이 무왕 대신 자기를 죽게 해 달라고 선왕(先王)께 기도한 글이 그 속에 들어 있으므로, 성왕이 그것을 보고는 울면서 말하기를 “지금 하늘은 위엄을 나타내어 주공의 덕을 밝힌 것이니, 소자(小子)가 주공을 친히 맞아들이겠다.”라 하고, 그제서야 주공을 맞아들였던 데서 온 말이다.
금등유책[金縢遺冊] 금등은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으로, 금(金)으로 봉인(封印)했다는 뜻인데, 즉 주 무왕 (周武王)이 병들었을 때, 주공(周公)이 단(壇)을 모아 놓고 자신을 대신 죽게 해 달라고 신명께 기도한 사실을 사관(史官)이 기록하여 금으로 봉인한 궤에 간직하여 둔 것을 말한다. 관숙(管叔)・채숙(蔡叔)은 다같이 주공의 형으로서, 주공이 ‘유자(孺子; 성왕(成王)을 말함)에게 불리할 것이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성왕이 주공을 의심하므로 주공이 스스로 피하여 동도(東都)에 가 있었는데, 어느 날 큰 우레와 바람이 일어나 대목(大木)이 뽑히고 익은 벼가 다 쓰러지자, 성왕이 놀라 점을 치기 위해 금등의 궤를 열어보다가, 옛날 주공이 무왕을 위해 자신을 대신 죽게 해 달라는 기도문을 발견하고는 드디어 주공에게 의심을 풀었다. <書經 周書 金縢・蔡仲之命>
금등이장유언행[金縢以藏流言行] 금등은 쇠줄로 봉함한 서함(書函)을 가리키는데, 일찍이 무왕(武王)의 병이 위독했을 때 주공(周公)이 태왕(太王)・왕계(王季)・문왕(文王)의 영혼께 무왕 대신 자기를 죽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축사(祝辭)를 금등으로 봉하여 두었던 데서 온 말이다. 그리고 유언(流言)은 무왕이 죽은 뒤에 주공의 형인 관숙(管叔)・채숙(蔡叔)이 주(紂)의 아들 무경(武庚)과 함께 ‘주공이 장차 어린 성왕(成王)에게 불리할 것이다.’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을 가리킨다. <書經 金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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