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려[黔驢] 금(검)주(黔州)의 나귀란 뜻으로, 졸렬한 기능(技能)을 비유한 말이다. 금(검)주에는 본디 나귀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귀를 싣고 들어가 그곳 산 밑에 풀어 놓았더니, 호랑이가 처음에는 나귀의 큰 체구와 큰 울음소리로 인해 그를 대단히 무서워했으나, 그 후 나귀와 점차 가까워진 다음 나귀의 발길에 한 번 채여 보고 나서는, 나귀에게 그 밖의 다른 기능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나귀를 물어 죽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柳河東集 卷19>
금려[禁旅] 금병(禁兵), 금군(禁軍). 본래는 경성의 향병(鄕兵)을 가리켰으나, 송나라 때에는 중앙에서 직접 관장하는 정규군(正規軍)을 가리켰다.
금려[禁廬] 대궐에서 시종하는 관원들이 거처하는 관사(官舍)를 가리킨다.
금려[衿廬] 조선 시대 경기도 금양현(衿陽縣)에 있던 광려산(匡廬山)을 가리킨다.
금려[金礪] 훌륭한 재상을 뜻한다. 서경(書經) 열명 상(說命上)에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만약 금(金)이라면 너를 숫돌[礪]로 삼겠다.”라고 하여, 자신을 보필하는 재상으로 삼겠다는 뜻을 말하였다.
금련[禁臠] 다른 사람은 건드릴 수 없게 금지된 고기라는 뜻으로 임금의 부마(駙馬)를 가리킨다. 동진(東晉)의 효무제(孝武帝)가 사혼(謝混)을 부마로 삼으려다가 얼마 안 되어 붕어(崩御)한 뒤에 원숭(袁崧)이 다시 그를 사위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자 왕순(王珣)이 원숭에게 “금련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농담하였다. 금련이란 원래 진 원제(晉元帝)가 강남(江南)으로 옮겨 갔을 때 형편이 어려워서 돼지 새끼가 들어와도 진귀한 음식이라 여겨 그 목덜미의 고기는 원제에게만 드린 데서 생긴 용어이다. <晉書 卷79 謝尙列傳 謝混>
금련[禁臠] 동진(東晉)의 원제(元帝)가 처음 건업(建業)에 진주했을 때에, 몹시 곤궁하여 돼지를 얻으면 진미로 여겼으며, 그중에도 정수리 부분을 더욱 진미로 여겨 다른 사람은 먹지 못하고 오직 황제만 이것을 먹을 수 있었다. 그 후 효무제(孝武帝)가 진릉공주(晉陵公主)를 사혼(謝混)에게 시집보내려 하였는데, 그만 황제가 승하하여 혼인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에 원숭(袁崧)이 사혼에게 딸을 시집보내려 하자, 옥순(玉珣)은 원숭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금련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농담을 하였는데, 그 후 사혼은 끝내 진릉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晉書 卷15 謝混傳>
금련[禁臠] 임금의 사위를 뜻한다. 동진(東晉)의 원제(元帝)가 처음 건업(建業)으로 옮겼을 때 경제가 어려워서 돼지 새끼가 들어와도 그 목덜미의 고기는 원제에게만 드리고 다른 사람들은 감히 먹을 수 없어서 금련이라고 하였다. 후에 효무제(孝武帝)가 왕순(王珣)에게 진릉공주(晉陵公主)를 위하여 신랑을 구하게 하니 왕순이 사혼(謝混)을 천거하여 효무제도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곧 효무제가 죽어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자 원숭(袁崧)이 자기의 딸을 사혼에게 시집보내고자 하니, 왕순이 “경은 금련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고, 사혼은 마침내 공주에게 장가들었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금련은 임금의 사위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世說新語 排調>
금련[禁臠] 임금이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물건으로, 임금의 사위를 가리킨다. 동진(東晉)의 무제(武帝)가 진릉공주(晉陵公主)를 위하여 왕순(王珣)에게 배필을 구하게 하니, 왕순(王珣)이 사혼(謝混)을 천거하였는데, 무제(武帝)가 사혼(謝混)을 부마(駙馬)로 삼으려다가 얼마 안 되어 붕어하였다. 이에 원산송(袁山松)이 자기의 딸을 사혼(謝混)에게 시집보내고자 하였으나 왕순(王珣)이 원산송(袁山松)에게 “금련(禁臠)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사혼(謝混)은 끝내 공주에게 장가들었다. 금련(禁臠)은 본래 돼지의 목덜미 살인데, 진(晉)나라 원제(元帝)가 강남으로 천도한 뒤에 공사간(公私間)에 매우 궁핍하여 돼지를 잡으면 목덜미 살은 원제(元帝)에게만 올린 데에서 유래하였다.
금련[金蓮] 금련촉(金蓮燭)이다. 옛날 궁중에서 사용하였던 납촉(蠟燭)인데, 촉대(燭臺)가 연꽃처럼 생겼기 때문에 금련촉이라고 한 것이다. 신하에 대한 왕의 특별한 예우를 뜻한다. 당나라 영호도(令狐綯)가 궁궐에서 밤늦게까지 황제와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갈 무렵에 촛불이 거의 다 꺼지자, 황제가 자신의 수레와 금련촉을 주어 보냈는데, 관리들이 이것을 보고 황제의 행차로 여겼다. <新唐書 卷166 令狐綯列傳>
금련[金蓮] 금으로 연꽃 모양새를 만들어 꾸민 황제가 쓰는 횃불인 금련화거(金蓮華炬)의 준말로 임금이 신하에 대해서 특별하게 예우(禮遇)하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때 영호도(令狐綯)가 대궐에서 야대(夜對)를 하고 돌아갈 적에 촛불이 없자, 황제가 승여(乘輿)와 금련화거를 내주어 돌아가게 하였는데, 이를 타고 가자 원리(院吏)가 바라보고서는 황제가 오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新唐書 卷166 令狐綯列傳>
금련[金蓮] 육조(六朝) 시대에 제 동혼후(齊東昏侯)가 황금으로 연꽃을 만들어 땅바닥에 붙여 놓고 반비(潘妃)를 시켜 그 위를 걷게 하자, 발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는 듯하였다 한다.
금련[金蓮] 남조(南朝) 제(齊)의 폐제(廢帝) 동혼후(東昏侯)가 황금으로 연꽃을 만들어 땅에 박아 놓고, 그 위로 반비(潘妃)를 걷게 하면서 말하기를 “걸음걸음마다 연꽃이 피는구나.”하였다 한다. <南史 齊廢帝 東昏侯紀>
금련[金蓮] 금빛이 나는 연꽃. 즉 불교(佛敎)의 가르침. 연꽃 모양의 불좌(佛座). 꽃등. 전족한 여인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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