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산[金石山] 책문(柵門)과 봉황성(鳳凰城) 사이에 있는 산이다.
금석상가[金石商歌]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있을 때 사흘이나 불을 때지 못하고 십 년 동안 새 옷을 해 입지 못하는 극빈(極貧)의 생활 속에서도 신발을 끌고 상송(商頌)을 노래하니 그 소리가 천지간에 가득 차면서 마치 금석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莊子 讓王>
금석성[金石聲] 금석(金石)의 소리. 글 읽는 소리가 카랑카랑하여 쇳소리와 석경(石磬)소리와 같음을 말한다. 장자(莊子) 양왕(讓王)에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머물 적에 해진 옷은 너덜거리고 얼굴은 부어서 푸석푸석하며 손발이 모두 트고 갈라져 있었다. 3일 동안이나 밥을 짓지 못하였고 10년 동안 옷을 새로 만들어 입지 못하였다. 또 갓을 바로 쓰려 하면 갓끈이 끊어지고 옷깃을 여미려 하면 옷이 찢어져 팔뚝이 보였으며 신을 신으면 신의 뒤축이 터져버렸다. 그런데도 신발을 끌면서 시경(詩經)의 상송(商頌)을 노래하면 소리가 하늘과 땅에 가득하여 마치 금속에서 나오는 듯하였다.[曳縱而歌商頌 聲滿天地 若出金石]”라고 하였다.
금석성[金石聲] 쇠나 돌로 만든 악기인 종경(鍾磬)에서 나는 음악 소리. 전하여 훌륭한 시문(詩文)에 비유한다. 진(晉)나라 손작(孫綽)이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짓고는 친구인 범영기(范榮期)에게 “그대는 시험 삼아 이 부를 땅에 던져보게나, 의당 금석 소리가 날 것일세.[卿試擲地 當作金石聲]”라고 하였는데, 범영기가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한 번 읽어보고서 찬탄하였다고 한다. <晉書 卷56 孫綽列傳>
금석약[金石藥] 쇠붙이나 돌붙이 약. 한유(韓愈)가 이박사묘지(李博士墓誌)를 지어 금석약(金石藥)을 복용하는 사람들을 경계했으나, 스스로 질병에 걸리자 유황을 마셨다. 하지만 병이 낫지 않고서 죽었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後集 卷16 人倫部 服金石藥> <類說 卷50 退之有聲樂服金石>
금석우[金石友] 교분이 두터움을 비유한다. 당(唐)나라 맹교(孟郊)의 심교(審交)라는 시에 “오로지 금석처럼 굳은 사귐이라야 현달함을 논할 수 있을 것이네.[唯當金石交 可以賢達論]”라고 하였다.
금석위개[金石爲開] 딱딱한 돌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통한다. 굳은 벽도 마음먹기에 따라 통한다. 일념을 다해서 하면 굳은 돌이라도 그 마음이 통한다는 뜻이다. 인간에 있어서 성심성의야말로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금석유문[金石遺文] 구양수(歐陽脩)가 육일거사전(六一居士傳)에 “내 집에 장서 1만 권이 있고, 삼대 이래 금석 유문을 집록한 것이 1천 권이다.[吾家藏書一萬卷, 集錄三代以來金石遺文一千卷.]”라고 하였다. <唐宋八大家文鈔 卷47 六一居士傳> 구양수가 집에 소장하고 있던 역대의 금문(金文), 석각(石刻)을 편집한 것이 집고록(集古錄)이며, 집고록발(集古錄跋)은 집고록(集古錄)에 실린 금문, 석각에 대해 고증하고 해설한 발문이다.
금석유성 불고불명[金石有聲 不考不鳴] 쇠붙이나 돌에 소리를 낼 수 있는 자질이 있지만 도에 맞추어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울리지 않음. 考는 ‘두드리다’의 뜻이다. <莊子 第12篇 天地>
금석음[金石音] 악기를 만드는 재료에 따라 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의 여덟 가지로 나눈 것을 팔음(八音)이라 하는데, 팔음 중 금(金)은 종 따위이고, 석(石)은 석경(石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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