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본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어찌 문장에 있어서 만이겠습니까. 일체의 온갖 일들에 다 해당되는 것이겠지요.
화담(花潭)선생이 밖에 나갔다가 제 집을 잃고 길에서 우는 자를 만났더랍니다.
화담선생이 “너는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20년이 되었습니다. 아침나절에 나왔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환하게 보이는지라, 기뻐서 집에 돌아가려니, 얼기설기 난 길에 갈림길도 많고, 대문들은 서로 같아 제 집을 분간하여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화담선생이 “내가 너에게 돌아갈 방도를 가르쳐 주마. 네 눈을 도로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것이다.”라고 하였답니다.
이에 그 사람이 눈을 감고 지팡이로 더듬으며, 발길 가는 대로 믿고 가니 바로 집에 도달하였더랍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실체가 뒤바뀌고, 희비(喜悲)의 감정이 작용했기 때문이니, 이것을 바로 망상(妄想)이라 하는 것이지요.
지팡이로 더듬으며 발길 가는 대로 믿고 걸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분수를 지키는 진정한 도리요, 제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되는 것이겠지요.
–
<答蒼厓답창애(2) / 창애에게 / 朴趾源박지원 : 燕巖集연암집>
–
還他本分, 豈有文章. 一切種種萬事摠然. 花潭出, 遇失家而泣於塗者. 曰: “爾奚泣?” 對曰: “我五歲而瞽, 今二十年矣. 朝日出往, 忽見天地萬物淸明, 喜而欲歸, 阡陌多岐, 門戶相同, 不辨我家. 是以泣耳.” 先生曰: “我誨若歸. 還閉汝眼. 卽便爾家.” 於是, 閉眼扣相, 信步卽到. 此無他. 色相顚倒, 悲喜爲用, 是爲妄想. 扣相信步, 乃爲吾輩守分之詮諦, 歸家之證印. <朴趾源 / 燕巖集 / 答蒼厓[之二]>
-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학자(學者)로 개성(開城)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복재(復齋)・화담(花潭),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벼슬은 하지 않고 도학(道學)에만 매진하였다. 두뇌가 명석(明晳)하고, 성격(性格)이 과감(果敢)하며, 의지(意志)가 굳세고 마음이 정직(正直)하였다. 집안이 가난해 독학으로 공부를 하여 이기론(理氣論)의 본질을 연구하여 이기일원설(理氣一元說)을 체계화하였으며, 수학・역학도 깊이 연구하였다. 저술로는 화담집(花潭集)이 있다. 황진이(黃眞伊), 박연(朴淵) 폭포(瀑布)와 함께 송도(松都) 삼절(三絶)이라 일컬어진다.
- 기유[豈有] 어찌 있겠는가. 어찌 있으리오. 어찌, (할 필요가) 있겠는가.
- 종종[種種] 물건(物件)의 가지가지. 물건이나 성질이 다른 가지가지. 이모저모. 여러 가지. 여러 가지로. 시간적이나 공간적으로 간격이 조금씩 뜨게.
- 천맥[阡陌] 밭 사이에 난 길. 남북으로 난 것을 천(阡), 동서로 난 것을 맥(陌)이라 한다. 경작지(耕作地)를 달리 일컫는 말.
- 색상전도[色相顚倒] 색상(色相)이 뒤바뀜[顚倒]. 색상(色相)은 불교 용어로, 겉으로 드러난 만물의 모습을 말한다. 색상은 본래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고 한다. 전도(顚倒) 역시 불교 용어로, 번뇌로 인해 망상(妄想)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 전제[詮諦] 불교 용어로 진제(眞諦)와 같은 말이다. 속사(俗事)의 허망한 도리인 속제(俗諦)와 구별되는 진정한 도리를 가리킨다.
- 증인[證印] 불교 용어로 인가(印可)와 같은 말이다. 제자가 진리를 증득(證得)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