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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국[羈縻國]~기미류[旣彌留]~기미물절[羈縻勿絶]


기미국[羈縻國]  말의 머리를 싼 것을 기(羈)라 하고 소의 고삐를 미(縻)라 하는바, 기미(羈縻)는 먼 지방의 약소국을 천자국에서 직접 통치하지 않고 매여 있게 할 뿐임을 이른다. 한서(漢書) 흉노전 하(匈奴傳 下)에 “흉노(匈奴)가 의(義)를 사모하고 공물을 바치면 예(禮)와 겸양으로 대하여 기미(羈縻)하고 끊지 않았다.[其慕義而貢獻 則接之以禮讓 羈縻不絶]”라고 보인다.

기미귀성상[箕尾歸星象]  재상급 관원의 죽음을 가리킨다. 은(殷) 나라 고종(高宗)의 재상 부열(傅說)이 죽어서 밤하늘의 기미성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莊子 大宗師>

기미내상사[氣味乃相似]  옛 선인들이 친구를 사귀었던 방법을 말하였다. 송나라 소식(蘇軾)이 해남(海南)으로 귀양 갈 때 황정견(黃庭堅)이 자첨적남해(子瞻讁南海)라는 시를 지어 주었는데 “자첨이 해남으로 귀양을 가니, 당시의 재상이 그를 죽이려 했네. 혜주의 밥 배불리 먹고, 자세히 연명 시에 화답하였네. 팽택은 천 년토록 이름 남겠고, 동파도 백세까지 전해지리라. 둘의 출처 비록 같지 않지만, 기상과 취미만은 서로 같아라.[子瞻讁海南 時宰欲殺之 飽喫惠州飯 細和淵明詩 澎澤千載人 東坡百世士 出處雖不同 氣味乃相似]”라고 한 구절이 있다.

기미류[旣彌留]  이 말은 임금이 죽음을 예감하고 유언을 남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서(尙書) 고명(顧命)에 “사월 달그림자가 지기 시작하던 날, 임금은 몸이 불편하셨다.……옥안석에 기대어 앉은 후 모두 부르셨는데……임금님이 말씀하시기를, ‘오, 병이 크게 더하여져 위태로워졌소. 병이 날로 더하여 저 이제 목숨이 끝나려하니, 맹서의 말을 하여 뜻을 잇게 하지 못할까 두려워 내 그대들에게 훈계하고 명하는 것이요.’[惟四月哉生魄 王不懌……憑玉几 乃同召……王曰嗚呼 疾大漸惟幾 病日臻 旣彌留 恐不獲誓言嗣 茲予審訓命汝]”라고 한 데서 보인다.

기미명[祁彌明]  공양전(公羊傳) 선공(宣公) 6년의 기사에 의하면, 진 영공(靈公)이 조돈(趙盾)을 해치려고 술자리에서 조돈에게 검을 구경시켜 줄 것을 요구하였다. 조돈이 일어나서 검을 바치려는데, 조돈을 따라온 시위(侍衛)였던 기미명(祁彌明)이 아래에서 소리치기를 “배불리 먹었으면 나와야지 무엇 때문에 임금의 처소에서 칼을 뽑습니까?”라고 하니, 조돈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계단을 건너뛰어 도망갔다. 영공에게 오(獒)라고 하는 주구(周狗)가 있었는데 개를 불러 조돈을 물게 하니, 개가 계단을 건너뛰어 따라갔는데, 기미명이 맞아 싸워서 그 목을 끊어 죽였다. 조돈이 돌아보고 말하기를 “임금의 개가 저의 개만 못합니다.[君之獒不若臣之獒]”라고 하였다.

기미물절[羈縻勿絶]  기미(羈縻)란 말에 굴레를 씌우거나 소에 고삐를 매어 통제한다는 뜻으로, 억센 상대를 회유(懷柔)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은 주변의 이민족(異民族)들에 대해 ‘잘 구슬리면서 외교 관계를 끊지 않는[羈縻勿絶]’ 정책을 취하였다. 한서(漢書) 권25 교사지 하(郊祀志下)에 “천자는 오히려 기미 정책을 쓰고 끊어버리지 않는다.[天子猶羈縻不絶.]”라고 하였다. 또, 전한(前漢)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난촉부로(難蜀父老)에 “듣건대, 천자가 오랑캐에 대해서는 그 의리가 속박하여 부리고 단절하지 않을 뿐이라고 한다.[蓋聞天子之於夷狄也 其義羈縻勿絶而已]”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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