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公曾一仕[장공증일사] 장공은 일찍이 한 차례 벼슬하였으나
壯節忽失時[장절홀실시] 장년에 갑자기 시운을 잃고 말았으니
杜門不復出[두문불부출] 문을 닫아 건 채 다시는 나가지 않고
終身與世辭[종신여세사] 죽을 때까지 세상과 이별을 하였다네
仲理歸大澤[중리귀대택] 중리가 벼슬 버리고 대택에 돌아오자
高風始在茲[고풍시재자] 고상한 풍도가 이로써 널리 퍼졌으니
一往便當已[일왕편당이] 한번 떠났으면 그만둠이 마땅한 것을
何爲復狐疑[하위부호의] 무엇 때문에 다시 머뭇거리는 것인가
去去當奚道[거거당해도] 가고 가서 어찌 또 그 길을 가려는가
世俗久相欺[세속구상기] 세속은 오래도록 서로를 속여 왔다네
擺落悠悠談[파락유유담] 떠도는 허튼소리 모두 걷어다 치우고
請從余所之[청종여소지] 내가 가려는 곳으로 따라나 오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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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飮酒二十首[其十二]음주20수12 / 나와 함께 돌아가세 / 陶淵明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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幷序병서 : 나는 한가롭게 살아 기뻐할 일이 적은데다 근래에는 밤마저 길어지는 차에, 우연찮게 좋은 술을 얻게 되어 저녁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적이 없다. 그림자를 돌아보며 홀로 잔을 비우고 홀연히 취하곤 하는데, 취한 후에는 언제나 시 몇 구를 적어 스스로 즐겼다. 붓으로 종이에 적은 것이 꽤 되어, 말에 조리도 두서도 없지만 애오라지 친구에게 쓰게 하여 이로써 즐거운 웃음거리로 삼고자 한다.[余閒居寡歡, 兼比夜已長, 偶有名酒, 無夕不飮. 顧影獨盡, 忽焉復醉. 旣醉之後, 輒題數句自娛. 紙墨遂多, 辭無詮次, 聊命故人書之, 以爲歡笑爾.] <飮酒二十首 幷序>
- 도연명[陶淵明] 도잠(陶潛).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 송(宋:유송劉宋) 초기 사람이다. 시인이자 문학가로 청신하고 자연스러운 시문으로 시명을 얻었다. 강주(江州) 심양(尋陽)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자는 원량(元亮)이다. 송(宋)나라에 와서 이름을 잠(潛)으로 바꾸었다. 일설에는 연명(淵明)이 그의 자(字)라고도 한다. 증조부 도간(陶侃)은 동진(東晉)의 개국공신으로 관직이 대사마에 이르렀으며, 조부 도무(陶茂)와 부친 도일(陶逸)도 태수를 지냈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생활을 위하여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항상 전원생활을 동경한 그는 팽택현령(彭澤縣令)이 되었으나 80여 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41세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고향에 은거한 뒤에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에 평소 그와 가깝게 지냈던 이들이 그에게 정절선생(靖節先生}이란 시호를 주어 불렀다. 양(梁)나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 “고금의 은일시인 가운데 첫머리[古今隱逸詩人之宗]”라 평가했을 만큼 그의 시풍이 중국문학사에 남긴 영향이 매우 크다. 주요 작품으로 음주(飮酒)・귀원전거(歸園田居)・도화원기(桃花源記)・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귀거래사(歸去來辭) 등이 있다. 도연명이 직접 지은 만사는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에 의만가사(擬挽歌辭)라는 제목으로 3수가 실려 있다.
- 장공[長公] 장지(張摯). 한(漢) 나라 장석지(張釋之)의 아들로, 대부(大夫) 벼슬에 이르러 면직된 뒤, 강직한 성품을 굽히지 않은 채 종신토록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史記 張釋之列傳> 후대에 세상에 아부하지 않는 사람의 대명사로 그의 자(字) 장공(長公)이 자주 쓰인다.
- 두문[杜門] 밖으로 나다니지 않으려고 집이나 방의 문을 닫아 막음. 술가(術家)가 점치는 팔문(八門) 가운데의 하나로 구궁(九宮)의 사록(四綠)이 본자리가 되는 흉한 문임.
- 두문불출[杜門不出] 집 안에만 들어 앉아 있고 나다니지 아니함.
- 중리[仲理] 후한(後漢)의 학자 양륜(楊倫), 자(字)가 중리(仲理)이다. 군(郡)의 문학연(文學掾)이라는 벼슬을 지냈으나 뜻에 맞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대택(大澤)에서 글을 가르쳤다. 제자가 천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세 번이나 불림을 받았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後漢書卷七十九上 儒林列傳第六十九上>
- 대택[大澤] 넓은 소택(沼澤)지방, 강호(江湖)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 대택[大澤] 옛날 못 이름이다. 안문산(雁門山) 북쪽에 있으며, 사방 천 리라 한다.
- 호의[狐疑] 의심하다. 의심이 많다. 여우가 의심이 많다는 뜻으로, 매사에 깊이 의심함을 이르는 말.
- 호의불결[狐疑不決] 여우는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하여 머뭇거리고 결행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호의미결(狐疑未決)이라고도 한다. 진(晉) 나라 때 곽연생(郭緣生)이 지은 술정기(述征記)에 “황하(黃河)의 나루터인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겨울에 강이 얼면 얼음의 두께가 몇 장이나 되어 수레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음이 얼기 시작할 때는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여우를 먼저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귀가 밝아서 얼음 밑에서 물소리가 나면 가다 말고 되돌아왔다. 여우가 무사히 강을 다 건너가면 사람들이 비로소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하였다.”고 하였다. 또, 초(楚) 나라의 굴원(屈原)은 이소(離騷)에서 “머뭇거리고 여우처럼 의심하는 내 마음이여, 스스로 가고파도 갈 수가 없네.[心猶豫而狐疑兮, 欲自適而不可]”라고 읊었다. 또, 후한서(後漢書)의 유표전(劉表傳)에 “원소(袁紹)가 조조(曺操)와 대치하고 있을 때 유표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때, 유표는 여우처럼 의심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한숭(韓嵩)을 조조에게 보내어 허와 실을 살피도록 하였다.[表狐疑不斷, 乃遣嵩詣操, 觀望虛實.]”라고 하였다.
- 파락[擺落] 털어 없앰. 내팽개치다. 벗어나다.
- 유유담[悠悠談] 한가하고 근심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허튼소리. 황당한 소리. 떠도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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