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箕仙] 기선은 신선 이름으로 길흉(吉凶)을 점칠 때 무격(巫覡)에게 사역되는 신선이라 한다.
기선[幾先] 무슨 사단(事端)이 일어나기 전, 즉 일어나려고 하는 바로 직전을 말한다.
기선군[騎船軍] 배를 타는 군사. 곧 수군(水軍). 고려 시대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선군(船軍)을 설치하고, 조선 시대에도 유지되었다.
기선록[記善錄]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이 편찬한 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을 말한다. 이덕홍이 평소에 이황으로부터 보고 들었던 것을 모아서 입학지서(入學之序)・조존지요(操存之要)・궁격지묘(窮格之妙)・송독지근(誦讀之勤)・산수지락(山水之樂)・거가지의(居家之儀)・제사지례(祭祀之禮)・사수취사지의(辭受取舍之義)・접물지용(接物之容)・논인물지품(論人物之品)・논처변지도(論處變之道)・추서지인(推恕之仁)・음식지절(飮食之節)・거향지사(居鄕之事)・진퇴지절(進退之節)・임종지명(臨終之命) 등 모두 16개 부문으로 분류하여 115조항을 수록하였으며, 이황의 언행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총론한 기선총록(記善總錄)이 수록되어 있는데, 말미에는 1571년(선조4)에 기록했다고 되어 있어 이황이 몰한 이후에 바로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선망호[其先亡乎]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15년조에 보인다. 주 은공(邾隱公)이 이해 봄에 노(魯)나라에 조현(朝見)하였는데, 예(禮)를 행할 때 은공은 옥을 든 손이 너무 높이 올라가서 그 얼굴이 위로 향하였고, 노나라 정공은 옥을 받는 자세가 너무 낮아서 그 얼굴이 아래로 향하였다. 자공(子貢)이 이를 보고 말하기를 “두 임금은 모두 죽을 것이다 …… 자세가 높아 얼굴이 위로 올라간 것은 교만함이 드러난 것이고, 자세가 낮아 얼굴이 아래로 향한 것은 태만함이 드러난 것이다. 교만은 화란(禍亂)에 가깝고, 태만은 질병에 가깝다. 우리 임금이 주인이시니 아마도 먼저 돌아가실 것이다[其先亡乎].”라고 하였는데, 이해 5월에 정공이 훙서(薨逝)하였다.
기선서여지[豈羨蜍與志] 어찌 조여(曹蜍)와 이지(李志)를 부러워하랴. 인품이 모자란 사람은 재능이 있어도 부러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조여(曹蜍)와 이지(李志)는 옛날 글씨를 잘 썼던 사람들이나 인품이 워낙 모자라서 글씨가 후세에 전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세설신어(世說新語) 품조(品藻)에는 “염파(廉頗)・인상여(藺相如)는 죽었지만 기상이 늠름하여 생기가 있고, 조여・이지는 살았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과 같다.”라 하였고, 황정견(黃庭堅)이 우군첩(右軍帖) 후미에 쓴 글에는 “조여・지 무리가 글씨는 왕희지(王羲之)와 동등했지만 전하기에는 부족하다. 편지 한 장의 글씨라도 수백 세를 전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사람의 인품에 달려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선악[幾善惡] 기(幾)는 선과 악이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통서(通書) 성기덕(誠幾德) 제3에 “마음이 발동하기 이전의 성의 상태에서는 작위가 없다. 그러다가 처음 발동하며 미세한 움직임이 일어날 때부터 선과 악이 나뉘어지기 시작한다.[誠無爲 幾善惡]”는 말이 나온다. 이 내용은 심경(心經) 권2에도 실려 있다.
기선악[幾善惡] 주돈이는 통서(通書)에서 “성은 함이 없으나 기미에는 선과 악이 있다.[誠無爲 幾善惡]”라고 하였다. 이 대목에 대해 주자는 “기라는 것은 처음 발동할 때의 미세한 움직임이니, 선과 악이 이때부터 나누어지게 된다.[幾者動之微 善惡之所由分也]”라고 해석하였다. <近思錄 卷1 道體類>
기선악도[幾善惡圖]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통서(通書)에 나온다. 그곳에 ‘성무위(誠無爲) 기선악(幾善惡)’이라고 하였으니, 성(誠)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고 기(幾)는 선악(善惡)이 갈리는 분기점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있는 도식(圖式)이 심경(心經) 2권 2장에 인용되어 있다.
기선지[錡宣之] 한(韓)나라 신하로 유세객(遊說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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