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교서[寄元校書] 원제(原題)는 초발양자기원대교서(初發揚子寄元大校書: 양자강을 막 떠나면서 교서 원대에게 부친다)이다. 당(唐)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이 대력(大歷) 5년 가을 양주(揚州)에서 낙양으로 가면서 지은 시로, 친구인 원대(元大)와 이별하는 슬픔을 읊었다. 그 시에 “오늘 아침 이별하고,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날까. 세상일은 물결 위의 배, 돌아 흐르는 물살에 어느 곳에 머물까.[今朝爲此別 何處還相遇 世事波上舟 沿洄安得住]”라는 구절이 있다.
기원녹죽[淇園綠竹] 기원의 녹죽. 기수(淇水) 가녘에 푸른 대가 우거져 옛 시인이 그로써 위무공(衛武公)의 덕을 기렸다. 시경(詩經)에 “저 기수 가 물굽이를 한번 보시게, 푸른 대숲 울창하게 우거져 있지 않나[瞻彼淇奧 綠竹猗猗]”라 하였다.
기원록[淇園綠] 시경(詩經)에 나오는 것과 같은 훌륭한 시를 가리킨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淇奧)에 “저 기수 가 물굽이를 한번 보시게, 푸른 대숲 울창하게 우거져 있지 않나[瞻彼淇奧 綠竹猗猗]”라고 하였다.
기원림[祇園林] 사찰을 가리킨다.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의 약칭으로 범어를 의역한 말이다. 석가모니 시대에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황금으로 기타태자(祇陀太子)의 원림을 사서 사원을 짓고 석가에게 설법해 주길 요청하였다. 기타태자 또한 원림의 나무를 기증하였기에,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게 되었다. 인도 불교 성지의 하나이며, 후에는 사찰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기원정사[祇園精舍] 옛날 인도의 수달장자(須達長者)가 사위국(舍衛國)의 기타태자(祇陀太子)의 정원에 석가를 위하여 세운 절이다. 인도 코살라국의 기타태자는 사위성(舍衛城) 남쪽에 기림(祇林)이라는 숲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수달(須達)이라는 부호가 석가모니를 위하여 이 숲을 매입하여 절을 짓고자 하였다. 기타태자는 숲을 모두 금으로 덮으면 팔겠다며 거절하였으나 수달은 금을 가져와 깔기 시작했다. 이에 감동한 태자가 숲을 넘겨주어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었다고 한다. 후세에 불교 사원의 별칭으로 쓰인다.
기원죽[淇園竹]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淇奧)에 “저기 기수 가 물굽이를 바라보니, 푸른 대나무 숲 아름답게 우거졌네. 문채나는 군자여, 절차탁마하는 듯 하도다.[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註)에 “기수 가에 대나무가 많아 한(漢)나라 때까지도 여전하였으니, 이른바 ‘기원(淇園)의 대나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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