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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인사과[吉人辭寡]~길일계사[吉日癸巳]~길제이복침[吉祭而復寢]


길욱[吉頊]  성질이 음독(陰毒)하고 일에 대하여 과감하게 말하였으며, 측천무후(測天武后) 때에 봉각난대 평장사(鳳閣鸞臺平章事)까지 지냈다. 처음 중종(中宗)이 황태자가 되지 못할 때에 장역지와 장창종이 자신들의 안전책(安全策)을 그에게 비밀히 묻자 “공의 형제는 총애를 받음이 이미 깊으니, 천하에 큰 공을 세우지 못하면 보전하지 못할 것이오. 지금 천하 백성들이 모두 이가(李家: 당 나라는 이연(李淵)이 세움)를 사모하오. 명공(明公)께서 만약 여릉(盧陵: 중종中宗) 및 상왕(相王: 예종睿宗)을 세우자고 청하여 백성들의 바람에 부응하면 복록을 길이 누길 것이오.”라고 하니, 역지 등은 그 말을 옳게 여겨 주청(奏請)하였다. <구당서(舊唐書) 혹리 상(酷吏上)>

길이[吉匜]  이(匜)는 고대에서 물이나 술을 담은 주전자 모양의 청동기이다.

길인[吉人]  착한 사람, 복되고 운 좋은 사람.

길인사과[吉人辭寡]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길한 사람은 말이 적고, 조급한 사람은 말이 많다.[吉人之辭寡, 躁人之辭多.]”라고 하였다.

길일계사[吉日癸巳]  목천자(穆天子)가 천하를 유람하다가 찬황산(贊皇山)에 올라가서 아래로 성을 굽어보고는 산 위에다 단을 쌓고서 비석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 비석에 ‘길일인 계사일[吉日癸巳]’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집고록(集古錄) 권1 주목왕각석(周穆王刻石)에 기록되어 있다.

길재[吉再]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고려삼은(高麗三隱)으로 불린다. 태조가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 하자, 고향인 선산 봉계(鳳溪)로 돌아와 조정의 부름에 나아가지 않고 여생을 마쳤다.

길제[吉祭]  담제(禫祭) 다음 달에 지내는 제사[踰月吉祭]를 말한다. 예기(禮記) 잡기(雜記)의 “상제(祥祭)에 상주가 복을 벗을 때 전날 저녁에 다음 날의 제사를 고하되 조복을 입고 한다. 상제에는 이전의 옷을 그대로 입는다.[祥 主人之除也 於夕爲期 朝服 祥因其故服]”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공영달의 소(疏)에 “담제를 지낸 뒤에는 담복을 입는데 조복에 침관 차림을 하고, 달을 넘겨서 길제를 지낼 때에는 현관에 조복 차림을 하고, 길제를 지내고 난 뒤에는 현단을 입고 거처하여 평상시로 돌아온다.[旣祭 乃服禫服 朝服綅冠 踰月吉祭 乃玄冠朝服 旣祭 玄端而居 復平常也]”라고 하였다.

길제[吉祭]  담제(禫祭)를 지낸 후에 새로 돌아가신 분의 신주를 사당에 들이면서 기존의 신위들과 함께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길제[吉祭]  죽은 지 27개월 만에 지내는 제사.

길제이복침[吉祭而復寢]  예기(禮記) 상대기(喪大記)에 나오는 구절로, 길제를 지낸 뒤에는 부인이 거처하는 내실에 다시 들어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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