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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환[螺鬟]~나환병이[羅紈餠餌]~나황[蘿幌]~나휘[羅暉]~나희[儺戱]


나환[螺鬟]  나환(螺鬟)은 소라 껍질과 쪽진 머리라는 말로, 산들이 둥글둥글 겹쳐 있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나환[螺鬟]  머리를 소라 껍데기 모양으로 틀어 올린 모습으로, 산봉우리를 형용하는 말이다.

나환[螺鬟]  부처의 머리카락이 소라처럼 되었으므로 불두(佛頭)를 나환이라 하고, 또 산 모양을 이르기도 한다.

나환니병이향[羅紈膩餠餌香]  소식(蘇軾)의 시 남원(南園)에 “봄 밭둑에 비 지나니 비단이 기름지고, 보리밭에 바람 부니 떡이 향기롭구나.[春疇雨過羅紈膩 麥風來餠餌香]”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 말한 비단은 곧 비단을 만드는 재료인 뽕나무를 가리킨 것이고, 보리밭은 곧 떡이나 밥을 만들 수 있으므로 말한 것이다.

나환병이[羅紈餠餌]  소식(蘇軾)의 시 남원(南園)에 “고운 복사꽃 푸른 버들을 심지 않은 뜻은, 사군이 농상의 일을 권면키 위함이었으리. 뽕나무밭엔 비 지나서 비단옷이 번드르하고, 보리밭둑엔 바람 불어 떡 향기가 물씬 풍기네.[不種夭桃與綠楊 使君應欲候農桑 春疇雨過羅紈膩 麥壟風來餠餌香]”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비단은 뽕나무를 가리킨 말이고, 떡은 곡식을 가리킨 말이다.

나환이병이향[羅紈膩餠餌香]  소식(蘇軾)의 남원(南園) 시에 “뽕나무 밭둑에 비 지나니 비단은 번지르르하고, 보리밭 고랑에 바람 부니 떡 내음은 향기롭네.[春疇雨過羅紈膩 麥壟風來餠餌香]”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비단은 곧 누에고치를 길러 비단을 얻게 되는 재료, 즉 뽕나무를 가리키고, 떡은 역시 떡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보리를 가리킨 데서 온 말이다.

나황[蘿幌]  나황은 여라 장막으로, 당나라 왕적(王績)의 ‘북산에서 거닐며 짓다[游北山賦]’에 “여라 장막으로 밤을 맞이하고, 모정으로 새벽 맞이하네.[結蘿幌而迎宵 敞茅軒而待曙]”라고 하였다. <佩文韻府>

나휘[羅暉]  자는 숙경(叔經)이고 경조(京兆) 두릉(杜陵: 지금의 서안西安) 사람이다. 벼슬은 우림감(羽林監)을 지냈다. 초서(草書)에 능하였다. 동한(東漢)의 서법가 두도(杜度)는 장초(章草)에 능했는데 최원(崔瑗)이 그 뒤를 이었고, 나휘(羅暉)와 조습(趙襲) 역시 뒤를 이었다. 조습은 금초(今草)의 창시자로 불리는 장지(張芝)와 가깝게 지냈는데, 장지는 스스로 이르기를 “최원에 비해서는 낫고, 두도보다는 부족하며, 나휘에 비해서는 떨어지지만 조습보다는 조금 낫다.[上比崔, 杜不足, 下方羅, 趙有餘.]”라고 하였다.

나흠순[羅欽順]  명(明) 나라 때의 학자로 호는 정암(整菴), 태화(泰和) 사람이다. 벼슬에서 물러나 초야에서 20여년 간을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몰두하였다. 실행으로써 선비들을 가르치고 격물치지의 학문에 전심하여 변석(辨析)이 정밀하였다. 저서로 곤지기(困知記)가 있다. <明史 卷282 羅欽順傳>

나희[儺戱]  산대놀이로, 고려 때부터 조선 시대에 성행하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면극이다. 처음에는 고려 초기에 중국의 옛날 의식이던 나례(儺禮)를 모방하여 궁중에서 행하다가, 예종 때부터 연극 형식으로 바뀌어 산대잡극(山臺雜劇)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조선에 들어와 특히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이를 상연하였다. 이것이 다시 민간에 등장, 가설무대에서 하기 시작하여 평민극(平民劇)으로 변하였다. 내용은 종이나 나무로 만든 탈을 쓰고 소매가 긴 옷을 입은 광대들이 풍류에 맞추어 춤과 노래와 재담 등으로 꾸민 극을 하는 것이다. 나례(儺禮), 나예(儺藝), 산대희(山臺戱), 산붕(山棚)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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