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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당촉당[洛黨蜀黨]~낙도인지선[樂道人之善]~낙득[落得]


낙담상혼[落膽喪魂]  쓸개가 떨어지고 혼을 잃음. 몹시 놀라 얼이 빠지고 정신(精神)이 없음을 일컫는다. 상혼낙담(喪魂落膽).

낙당[洛黨]  송 철종(宋哲宗) 원우(元祐) 연간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는 수구파(守舊派) 조신(朝臣) 가운데에, 정이(程頤)를 우두머리로 하는 낙당(洛黨)과 소식(蘇軾)을 영수로 하는 촉당(蜀黨)이 결성되어, 북송(北宋)이 망할 때까지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하지 않고 쟁탈전을 벌였다. <宋史 卷340, 卷427>

낙당[洛黨]  송 철종(宋哲宗) 원우(元祐) 연간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한 삼당(三黨)의 하나로 촉당(蜀黨)・삭당(朔黨)과 대립하였다. 정이(程頤)를 주축으로 주광정(朱光庭)・가역(賈易) 등이 따랐는데, 정이가 낙양(洛陽) 출신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당[洛黨]  낙흥부원군(洛興府院君) 김자점(金自點)을 중심으로 한 당파. 1650년(효종1) 김자점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었다. 유림의 영수(領袖)인 김상헌 및 김집을 위시한 학자들이 효종의 즉위와 함께 조정에 대거 진출하자, 이들을 산당(山黨)이라 하여 낙당과 대칭하였다.

낙당촉당[洛黨蜀黨]  북송(北宋) 철종(哲宗) 원우(元祐) 연간에 있었던 당파들이다. 당시 송나라 조정에는 낙당(洛黨)・삭당(朔黨)・촉당(蜀黨)의 세 당이 있어 이를 원우3당(元祐三黨)이라 하였다. 낙당은 낙양 사람인 이천(伊川) 정이(程頤)를 영수로 하였기 때문에 낙당이라 불렸고, 촉당은 영수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촉지방 사람이기 때문에 촉당으로 일컬어졌으며, 삭당은 유지(劉贄)를 추종하였다. 이들은 서로 대립하였는데, 낙당과 촉당의 갈등이 더욱 심하였다.

낙당촉당[洛黨蜀黨]  송(宋)나라 철종(哲宗) 무렵의 당파로, 촉당(蜀黨)은 소식(蘇軾), 여도(呂陶) 등이 주축을 이루고, 낙당(洛黨)은 정이(程頤), 주광정(朱光庭) 등이 주축을 이루었다. 소식이 사천(四川), 즉 촉(蜀)의 미주(眉州) 출신이고, 정이가 낙양(洛陽) 출신이기 때문에 이런 당명이 생겼다. 처음에는 촉당과 낙당 모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였으나 나중에 견해가 달라져 대립하였다.

낙당화흥[洛黨禍興]  낙당(洛黨)의 화(禍)가 일어남. 낙당(洛黨)은 정이천(程伊川)을 가리킨다. 북송(北宋) 철종(哲宗) 때에 3개 당파가 있었으니, 곧 낙양(洛陽) 부근에 살던 이천(伊川)을 영수(領袖)로 하는 낙당(洛黨)과 촉(蜀)지방 출신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영수로 하는 촉당(蜀黨)과 삭주(朔州) 출신의 유지(劉摯)를 영수로 하는 삭당(朔黨)이 있었는 바, 이천(伊川)이 당쟁에 휘말리게 되자, 그의 제자인 형서(邢恕)는 화(禍)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천(伊川)을 모함하여 부주(涪州)로 귀양가게 하였다.

낙도육덕지공[樂道毓德之功]  도를 즐기고 덕을 기른 공.

낙도인지선[樂道人之善]  공자가 유익한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 가운데에 ‘남의 선한 점을 즐겨 말하는 것[樂道人之善]’이 들어 있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제5장에 공자가 “유익한 좋아함이 세 가지이고, 손해되는 좋아함이 세 가지이니, 예악을 따르기 좋아하며, 사람의 선함을 말하기 좋아하며, 어진 벗이 많음을 좋아하면 유익하고, 교만함과 방종함을 좋아하며, 편안히 노는 것을 좋아하며, 향락에 빠짐을 좋아하면 손해가 된다.[益者三樂, 損者三樂,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益矣;樂驕樂, 樂佚遊, 樂宴樂, 損矣.]”라고 하였다.

낙동[洛東]  상주(尙州) 동쪽 낙동강 변에 있다.

낙두[絡頭]  말머리에 꾸미는 장식을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고도호의 청총마 노래[高都護驄馬行]’에 “푸른 실로 머리 장식한 채 그대 때문에 늙나니, 무슨 수로 다시 넓은 길로 나갈꼬.[靑絲絡頭爲君老 何由卻出橫門道?]”라고 하였다.

낙득[落得]  결과. 합계. 맨 나중 남은 것. 좋지 못한 결과를 얻다. ~하는 지경에 이르다. 나쁜 결과가 되다. ~를 초래하다. ~가 되고 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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