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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서욕재진후[欒書欲載晉侯]~난석[暖席]~난설[灤囓]


난서[欒書]  진(晉)나라의 정경(正卿)이다.

난서욕재진후[欒書欲載晉侯]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6년조에 “이해 6월 그믐 갑오일에 언릉(鄢陵)에서 진 여공(晉厲公)이 초 공왕(楚共王), 정 성공(鄭成公)의 연합군과 전투를 치르려고 할 때에, 당시 진군(晉軍)의 전면에 진창이 있어서 진군은 모두 혹은 좌로 우로 진창을 피해 갔다. 이때에 난침(欒鍼)은 여공의 거우(車右)가 되었으며, 난서(欒書)와 범문자(范文子)는 그 족속을 거느리고 좌우에서 여공의 수레를 호위해 가고 있었는데, 여공의 수레가 진창에 빠지자 난서는 자기의 수레에 여공을 태우려 하였다. 그러자 난침이 ‘서(書)는 물러나시오. 국가의 관원은 각기 맡은 임무가 있는데, 어찌 모든 일을 전담하려 하십니까. 또 다른 관원의 직권을 침범하는 것은 모(冒)이고, 자기의 직무를 버리는 것은 만(慢)이고, 자기의 부대를 벗어나는 것은 간(姦)입니다. 만약 옮겨 태운다면 이 세 가지 죄가 있게 되니,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書退. 國有大任, 焉得專之? 且侵官, 冒也; 失官, 慢也; 離局, 姦也. 有三罪焉, 不可犯.]’라고 하고서, 여공의 수레를 들어 진창에서 빠져 나오게 하였다. 이는 군주의 면전이기 때문에 자식인 난침이 그의 아버지인 난서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라고 한 데서 보인다.

난서욕재진후[欒書欲載晉侯]  예기(禮記) 집설(集說)에 “아버지를 섬기는 자는 집에 두 높은 분이 없으니, 비록 어머니라도 감히 아버지와 대등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른과 어린이를 막론하고 모두 이름을 부르니, 감히 사사로운 공경을 그 어른에게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군주를 섬기는 자는 나라에 두 높은 분이 없으니, 비록 아버지라 하더라도 군주와 대등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귀천과 존비를 막론하고 모두 이름을 부르니, 감히 사사로운 공경을 그 높이고 귀하게 여기는 분에게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춘추(春秋)에 ‘언릉(鄢陵)의 싸움에 난서(欒書)가 진후(晉侯)를 수레에 태우려 하자, 그의 아들 난침(欒鍼)이 말하기를 「서(書)는 물러나시오.」’라고 하였으니, 이는 군주의 앞에서 신하가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비록 아버지라도 또한 감히 대등할 수가 없는 것이다.[呂氏曰:“事父者, 家無二尊, 雖母不敢以抗之. 故無長幼皆名, 不敢致私敬於其長也, 事君者, 國無二尊, 雖父不可以抗之. 故無貴踐尊卑皆名, 不敢致私敬於其所尊貴也. 春秋‘鄢陵之戰, 欒書欲載晉侯, 其子鍼曰「書退」’, 此君前臣名. 雖父亦不敢抗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난석[暖席]  앉은 자리가 따스해짐. 문자(文子)에 “묵적은 굴뚝에 불을 땔 겨를이 없었고, 공자는 자리를 덥힐 사이가 없었다.[墨子無黔突, 孔子不暖席.]”라고 하였다. 이는 늘 떠돌기 때문에 앉은 자리가 따뜻할 새가 없다는 뜻이다.

난석성[亂石聲]  수레바퀴에 깔려 덜컹거리는 자갈 소리. 백성들의 아우성.

난선용봉가[鸞扇龍鳳駕]  난새의 단선은 직녀의 얼굴을 가린 비단 부채이고, 용봉의 수레는 견우가 몰고 온 수레이다. 곧 난선(鸞扇)은 직녀성을, 용봉가(龍鳳駕)는 견우성을 상징한다. 이상은(李商隱)의 시 칠석(七夕)에 “난선이 기울고 봉황 장막 펼쳐지니, 은하수 다리 가로질러 흐르고 까치가 날아드네.[鸞扇斜分鳳幄開 星橋橫過鵲飛回]”라고 하였다.

난설[灤囓]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2에 나오는 “옛날에 계력을 초산 기슭에 장사 지냈는데 난수가 넘쳐 무덤의 흙이 씻겨 나가 관의 머리가 드러났다.[昔王季歷葬於楚山之尾 欒水齧其墓 見棺之前和]”라는 구절에서 온 말로, 묘혈에 물이 든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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