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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곡수[蘭亭曲水]~난정곡치[鸞停鵠峙]~난정기[蘭亭記]


난정곡수[蘭亭曲水]  진 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 늦은 봄에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서 왕희지(王羲之), 사안(謝安) 등 42인의 명사들이 모여 계사(禊事)를 행하고 이어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으며 성대한 풍류놀이를 한 것을 이른다. 왕희지가 지은 난정기(蘭亭記)에 그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다.

난정곡치[鸞停鵠峙]  현사(賢士)가 벼슬자리에 있음을 뜻한다.

난정곡치[鸞停鵠峙]  자손이 어질고 뛰어난 것을 비유한다.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전중소감 마군 묘지(殿中少監馬君墓志)’의 “물러나 소부(少傅)를 보았는데, 푸른 대 푸른 오동에 난새와 고니가 우뚝 선 듯하였으니, 능히 그 가업을 지킬 만한 이였다.[退見少傅, 翠竹碧梧, 鸞鵠停峙, 能守其業者也.]”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난정기[蘭亭記]  동진(東晉) 때의 왕희지(王羲之)가 회계(會稽) 산음현(山陰縣)에 있는 난정(蘭亭)에서 계모임을 가졌을 때 지은 글이다.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에 “영화 구년 계축 늦은 봄 초순에 회계 산음의 난정에 모였으니, 계사를 행하기 위해서이다. 뭇 현재들이 다 오고, 젊은이와 나이 많은 이가 다 모였다. 이곳에는 높은 산과 험준한 봉우리와 무성한 숲과 긴 대나무가 있고, 또 맑은 시냇물과 거센 여울이 좌우에 서로 비쳐 띠처럼 둘러 있는지라, 시냇물을 끌어다 술잔 띄울 곡수를 만들고, 차례로 벌여 앉으니, 비록 관현악의 성대함은 없으나, 술 한 잔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는 것이 또한 그윽한 정을 펴기에 충분하였다.[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 會于會稽山陰之蘭亭 修禊事也 群賢畢至 少長咸集 此地有崇山峻嶺 茂林脩竹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列坐其次 雖無絲竹管絃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라고 하였다.

난정도[蘭亭圖]  난정도(蘭亭圖)는 동진(東晉) 때 왕희지(王羲之)를 비롯한 시인 묵객들이 회계산(會稽山)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 모여 수계(修禊)한 뒤 시를 읊고 즐겼던 일을 그린 그림이다.

난정묵본[蘭亭墨本]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첩(蘭亭帖)을 말한다. 진 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353) 늦은 봄에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서 왕희지, 사안(謝安), 손작(孫綽) 등 42인의 명사(名士)가 모여 계사(禊事)를 행한 뒤에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으며 성대한 풍류놀이를 즐긴 이야기가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에 나온다. 왕희지가 잠견지(蠶絹紙)에 서수필(鼠鬚筆)로 쓴 이 난정수계서(蘭亭修禊序)의 진본(眞本)이 당 태종(唐太宗) 초에 발견되자, 태종이 제왕(諸王)에게 탑본(榻本)을 하사하고, 그 진본은 옥갑(玉匣) 속에 넣어 애지중지하였는데, 자기가 죽은 뒤 소릉(昭陵)에 함께 묻도록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난정묵적[蘭亭墨跡]  왕희지(王羲之)의 글씨 중에는 난정첩(蘭亭帖)이 가장 유명하다.

난정문[蘭亭文]  난정(蘭亭)의 글은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첩(蘭亭帖)을 가리킨다. 진 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353) 늦은 봄에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에서 왕희지, 사안(謝安), 손작(孫綽) 등 42인의 명사(名士)가 모여 계사(禊事)를 행한 뒤에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으며 성대한 풍류놀이를 즐긴 이야기가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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