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괴[南蒯] 춘추 시대 노(魯) 나라 비읍(費邑)의 읍재(邑宰)인 남괴(南蒯)가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평자(季平子)를 배반했을 때, 당초에 그의 힘에 눌려 동조하던 자들이 백성들이 남괴를 싫어함을 알고 남괴를 협박하기를 “우리는 옛 임금을 잊지 못한다. 그러니 살고 싶거든 도망가라.”라고 하여 드디어 제(齊) 나라로 달아났다고 한다. <春秋佐傳 昭公 三年>
남괴황상길[南蒯黃裳吉] 남괴(南蒯)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이다. 노나라 계씨(季氏)의 읍재(邑宰)가 되었는데, 소공(昭公) 12년에 계평자(季平子)가 즉위하여 자기를 예우하지 않자 비읍(費邑)을 차지하고 반란을 일으키려 하면서 점을 쳤는데, ‘곤지비(坤之比)’인 ‘황상원길(黃裳元吉)’의 점괘가 나왔다. 남괴는 이것을 크게 길한 점괘라고 여겨 반란을 일으켰는데,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곤괘의 육오효가 ‘황상원길’인 것은 신하로서 아래에 있으면서 중(中)을 지키고 있을 때 그렇다는 말이지 남괴처럼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가 이 점괘를 얻으면 크게 흉한 점괘가 되는데, 남괴는 ‘황상원길’이 크게 길하다는 뜻으로만 해석하였던 것이다. <春秋左氏傳 昭公12年> <周易 坤卦 六五>
남괴황상원길[南蒯黃裳元吉] 노(魯)나라 계씨(季氏)의 사읍(私邑)인 비(費) 땅의 읍재(邑宰)인 남괴(南蒯)는, 계평자(季平子)가 대부(大夫)가 되어 자기를 예우하지 않자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먹었다. 이때 점을 쳤는데 곤괘(坤卦)가 비괘(比卦)로 간 것을 얻었다. 점을 치는 법에서는 한 효(爻)가 변하였을 경우에는 본래 괘(卦)의 변효(變爻)의 효사(爻辭)로 점을 치는바, 남괴(南蒯)는 곤괘(坤卦) 육오(六五)의 효사(爻辭)인 ‘황상원길(黃裳元吉)’을 보고 매우 길하다고 생각하고서 반란을 실행하려고 이 일을 자복혜백(子服惠伯)에게 물었는데, 혜백(惠伯)이 “내가 이에 대해서 일찍이 배운 것이 있습니다. 충신(忠信)의 일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밖은 강하고 안은 온순한 것이 충(忠)이요, 화(和)로써 정(貞)을 따름이 신(信)이니, 그러므로 황상원길(黃裳元吉)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황(黃)은 중앙의 색(色)이요, 치마[裳]는 아래의 꾸밈이요, 원(元)은 선(善)의 으뜸이니, 중심(中心)이 불충(不忠)하면 그 색(色)을 얻지 못한 것이요, 아랫사람이 공손하지 않으면 그 꾸밈을 얻지 못한 것이요, 일이 선(善)하지 않으면 그 극(極)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吾嘗學此矣 忠信之事則可 不然必敗 外彊內溫 忠也 和以率貞 信也 故曰 黃裳元吉 黃 中之色也 裳 下之飾也 元 善之長也 中不忠 不得其色 下不共 不得其飾 事不善 不得其極]”라고 답하여 충고하였다. 그러나 남괴(南蒯)는 이 말을 듣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제(齊)나라로 도망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 12년>
남교[南郊] 남쪽 교외. 시와 읍의 남쪽. 옛날에 사면을 시행할 때에는 남교에 가서 하였다.
남교[南郊] 서울 남쪽의 교외라는 뜻으로서, 옛날에 천자(天子)가 하지(夏至)에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오직 천자만이 남쪽 교외에서 하늘에 제사 지낼 수 있었다.
남교[藍橋] 다리 이름이다. 섬서성 남전현(藍田縣) 동남 남계(藍溪) 위에 있다. 그곳에 선굴(仙窟)이 있는데 당(唐)나라 배항(裵航)이 옥 절구를 예물로 하여 선녀 운영(雲英)에게 장가든 곳이라고 전한다.
남교가기[南郊佳氣] 명나라 이동양(李東陽)의 입춘일거가예남교(立春日車駕詣南郊)에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것을 형용하여 “북두성 묵은 자루는 해를 따라 돌고, 남쪽 교외의 아름다운 기운은 성 저편에서 온다.[北斗舊杓依歲轉 南郊佳氣隔城來]”라고 하였다.
남교경장[藍橋瓊漿] 남교는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동남쪽의 남계(藍溪)에 있는 다리 이름이다. 거기에는 선굴(仙窟)이 있는데, 당나라의 배항(裵航)이 이곳을 지나다가 선녀인 운영(雲英)을 만나서 선인들이 마시는 음료인 경장(瓊漿)을 얻어마셨다고 한다. <傳奇 裵航>
남교도약[藍橋擣藥] 당(唐) 나라 때 배항(裵航)이 선녀인 운교부인(雲翹夫人)을 만났을 때, 운교부인이 배항에게 시(詩)를 주어 “경장을 한번 마시면 온갖 감정이 생기고, 현상을 다 찧고 나면 운영을 만나리라. 남교가 바로 신선이 사는 곳인데, 하필이면 기구하게 옥경을 오르려 하나.[一飮瓊漿百感生 玄霜搗盡見雲英 藍橋便是神仙窟 何必崎嶇上玉京]”라 하였는데, 뒤에 배항이 남교를 지나다가 목이 말라 한 노구(老嫗)의 집에 들어가 물을 요구하자, 노구가 처녀 운영(雲英)을 시켜 물을 갖다 주었다. 그래서 배항이 그 물을 마시고는 앞서 운교부인의 예언을 생각하여 운영에게 장가들기를 청하자, 노구가 “옥저구(玉杵臼)를 얻어 오면 들어 주겠다.”라 하므로, 뒤에 배항이 옥저구를 얻어서 마침내 운영에게 장가들어 신선이 되어 갔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