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覽鏡書懷남경서회 / 거울을 보고 심회를 적다 / 李白이백


得道無古今[득도무고금]   도를 얻으면 고금을 뛰어넘고

失道還衰老[실도환쇠로]   도를 잃으면 도리어 노쇠하니

自笑鏡中人[자소경중인]   스스로 웃노라 거울 속 사람아

白髮如霜草[백발여상초]   백발이 서리 맞은 풀과 같구나

捫心空嘆息[문심공탄식]   가슴 쓰다듬고 헛되이 탄식하며

問影何枯槁[문영하고고]   묻노니 그대 어찌 그리 말랐나

桃李竟何言[도리경하언]   봉숭아 오얏이 언제 말을 하던가

終成南山皓[종성남산호]   마침내 남산 들어가 신선되리라

<覽鏡書懷람경서회 / 거울을 보며 회포를 적다 / 李白이백>


  • 이백[李白]  당(唐)나라 때의 시인.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취선옹(醉仙翁).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의 대표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이었다고 전한다. 출생지는 오늘날의 쓰촨성[四川省]인 촉(蜀)나라의 장밍현[彰明縣] 또는 더 서쪽의 서역으로서, 어린 시절을 촉나라에서 보냈다. 당 현종(唐玄宗) 때 한림학사(翰林學士)에까지 올랐으나 현종의 실정 이후 정치에 뜻을 잃고 방랑시인이 되었다. 그의 시는 서정성(抒情性)이 뛰어나 논리성(論理性), 체계성(體系性)보다는 감각(感覺), 직관(直觀)에서 독보적(獨步的)이다. 술, 달을 소재(素材)로 많이 썼으며, 낭만적(浪漫的)이고 귀족적(貴族的)인 시풍을 지녔다. 천하를 주유하며 수많은 시를 남겼으며, 그의 생활 태도를 반영한 대표작으로는 촉도난(蜀道難)이 있다.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30권이 전한다.
  • 심회[心懷]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
  • 회포[懷抱]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情).
  • 남산호[南山皓]  상산사호(商山四皓), 즉 선인을 가리킨다. 상산(商山)이 종남산(終南山)의 남쪽의 지맥이라 남산호(南山皓)라고 한 것이다. 이백(李白)의 시 ‘금릉가, 송별범선(金陵歌, 送別范宣)’에 “장강 만 리 한 맘으로 그대 보냈지만, 다음에 남산으로 그대 보러 찾아가리.[送爾長江萬里心, 他年來訪南山皓]”라고 하였다. 상산사호(商山四皓)는 줄여서 사호(四皓)라고도 부르며 진(秦)나라 말기의 은사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기리계(綺里季), 녹리(甪里) 4명이 난세를 피해 상산에 은거하여 버섯 등을 따 배를 채우며 지냈는데, 네 사람 모두 팔십을 넘긴 나이로 수염과 머리가 하얗대서 세상에서 사람들이 이들을 상산사호라고 불렀다. 이들은 스스로 자지가(紫芝歌)라는 이름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동원공(東園公)은 성이 당(唐)이고 이름은 병(秉)이며 자는 선명(宣明)이다.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서산도(西山島) 서북쪽에 있는 봉황산(鳳凰山) 남쪽에 일동촌(一東村)이 있는데, 동원공이라는 호칭은 이곳에 은거한 것에 연유하여 생겼다. 마을에서는 동원공을 기리는 사당을 세웠다. 사당의 문루 정면에는 동원공사(東園公祠)라고 쓰여있고, 안쪽에는 상산영수(商山領袖)라는 가로 판액이 걸려있다. 하황공(夏黃公)은 성이 최(崔), 이름은 광(廣)이며 자는 소통(少通)이다. 기리계(綺里季)는 성이 오(吳), 이름은 실(實), 자는 자경(子景)이다. 녹리선생(甪里先生)은 각리선생(角里先生)이라고도 하는데, 성이 주(周), 이름은 술(術)이며 자는 원도(元道)이다.
  • 도리[桃李]  복숭아와 오얏. 사마천(司馬遷)이 이광(李廣)의 인품을 흠모하여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알고서 찾아오기 때문에 그 아래에 자연히 길이 이루어진다.[桃李不言 下自成蹊]”고 평한 글이 사기(史記) 권109 이장군열전찬(李將軍列傳贊)에 나온다. 이 말은 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이광은 한(漢) 나라 무제(武帝) 때의 명장으로, 그가 우북평태수(右北平太守)로 부임하자 흉노(匈奴)가 비장군(飛將軍)이라고 무서워하면서 감히 침입하지 못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 도리[桃李]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 후배 또는 문도(門徒)를 가리킨다. 한시외전(韓詩外傳) 권7에 “무릇 봄철에 복숭아나무나 자두나무를 심으면 여름에는 그늘 아래에서 쉴 수가 있고 가을에는 열매를 먹을 수 있다.[夫春樹桃李, 夏得陰其下, 秋得食其實.]”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때로는 젊은 날의 청춘을 이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다툰다는 의미로 소인배를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혹은 복숭아와 오얏은 열매가 많이 달린다 하여 선대의 음덕을 받은 자손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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