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남악풍류[南岳風流]~남악현표[南嶽玄豹]~남안군[南安軍]~남양[南陽]


남악표[南嶽豹]  남산표(南山豹). 서주(西周) 때 도(陶) 땅의 대부(大夫) 답자(答子)가 3년 동안 도 땅을 다스렸으나 명예는 드러나지 아니하고 집안만 세 배로 부유하게 되었다. 그러자 답자의 아내가 아이를 안고 울면서 말하기를 “첩이 들으니 남산에 검은 표범이 있는데 안개비 속에서 이레 동안이나 가만히 있으면서 산을 내려와 먹을 것을 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 털을 윤택하게 하여 문채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드러나지 않아야 해를 멀리 할 수 있는 법이니, 개나 돼지도 먹을 것을 가리지 않고 제 살만 찌우면 앉은 자리에서 잡아먹힐 뿐입니다.[妾聞南山有玄豹, 霧雨七日而不下食者, 何也? 欲以澤其毛而成文章也. 故藏而遠害, 犬彘不擇食以肥其身, 坐而須死耳.]”라고 하였다. 이에 그 시어머니가 노하여 답자의 아내를 내쳐버렸는데, 과연 1년 만에 도적이 들어 주살을 당하고 말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남산의 표범은 은둔자(隱遁者)를 의미한다. <列女傳 卷2 賢明傳 陶答子妻>

남악풍류[南岳風流]  남악은 형산(衡山)을 가리킨다. 일찍이 주희(朱熹)가 친구인 남헌(南軒) 장식(張栻)과 함께 남악을 유람하면서 시를 주고받았다. 이때 지은 시가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에 실려 있다.

남악현표[南嶽玄豹]  열녀전(列女傳) 도답자처(陶答子妻)에 “남산에 검은 표범이 있는데, 안개비 내리는 7일 동안 산을 내려가 먹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 털을 윤택하게 하여 문장을 이루려는 것이다.[南山有玄豹, 霧雨七日而不下食者, 何也. 欲以澤其毛而成文章也.]”라는 말이 있다.

남악흥[南嶽興]  남악은 중국 오악(五嶽)의 하나인 형산(衡山)을 말하는데, 송나라의 주희(朱熹)가 남악에 올라 속세를 떠날 뜻을 읊은 일이 있다.

남안군[南安軍]  송대(宋代)에 있었던 강남서로(江南西路)에 속한 군(軍: 郡)의 명칭이다. 지금의 강서성(江西省)에 있었다. 명대(明代)에는 강서성(江西省)에 속하는 부(府)를 설치하였다.

남양[南陽]  전국 때 지명이 남양(南陽)인 곳은 세 곳이 있었다. 태항산(太行山) 남쪽의 위(魏)나라와 한(韓)나라 령, 하남성(河南省) 남양시(南陽市) 일대의 초(楚)나라 령, 그리고 지금의 산동성 문양과 태산 일대의 제(齊)나라 령이다.

남양[南陽]  음양과 방위의 관계는 산과 물이 다르다. 산(山)을 기준으로 할 때는 남쪽이 양(陽)이고 북쪽이 음(陰)이지만, 물을 기준으로 할 때는 남쪽이 음(陰)이고 북쪽이 양(陽)이다.

남양[南梁]  한(韓)나라 읍(邑)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임여현(臨汝縣) 동쪽에 있었다.

남양[南陽]  위(魏)나라 읍(邑)으로 태항산(太行山) 남쪽, 황하(黃河)의 북쪽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획가현(獲嘉縣) 일대이다.

남양[南陽]  하남성(河南省) 남양현(南陽縣) 일대. 춘추시대에는 진(晉)나라 땅, 전국시대에는 제(齊)나라 땅이었으며 진(秦)나라 때 군(郡)으로 설치되었다.

남양[南陽]  서천(舒川)의 옛 이름이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