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취형초[南取荊楚] 송 태조(宋太祖) 건덕(乾德) 원년(963)에 출병하여 형남(荊南)과 호남(湖南)을 취한 사실을 가리킨다. 형(荊)・초(楚)는 지금의 호북(湖北)・호남(湖南) 일대에 해당한다. 당시에 고계흥(高季興)이 세운 남평(南平)과 유언(劉言)이 세운 형(荊), 두 나라가 이 지역에 있었다. 송(宋)나라는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의 혼란기를 종식시키고 천하(天下)를 통일하였는데, 건국 초기에는 아직 몇 개의 나라들이 신복(臣服)하지 않고 할거(割據)하고 있었다. 형초(荊楚)는 남평(南平)으로 형남(荊南)에 도읍하여 형남(荊南)이라고도 칭하였는데, 당시 고계충(高繼冲)이 할거(割據)하고 있었다. 오대십국(五代十國)은 당(唐)・송대(宋代) 사이에 중국을 할거한 나라들로 오대(五代)는 후양(後梁: 주전충朱全忠), 후당(後唐: 이존욱李存勖), 후진(後晉: 석경당石敬瑭), 후한(後漢: 유지원劉知遠), 후주(後周: 곽위郭威)를 이르며, 십국(十國)은 전촉(前蜀: 왕건王建)과 후촉(後蜀: 맹지상孟知祥), 오(吳: 양행밀楊行密), 초(楚: 마은馬殷), 민(閩: 왕심지王審知), 오월(吳越: 전류錢鏐), 남한(南漢: 유은劉隱), 북한(北漢: 유민劉旻), 형남(荊南: 고계흥高季興), 남당(南唐: 이승李昇)을 이른다.
남치근[南致勤] 자는 근지(勤之), 본관은 의령(宜寧), 시호는 무양(武襄)이다. 전라도 좌방어사(左防禦使)가 되어 호남 지방에 대거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였고, 삼도 토포사(三道討捕使)가 되어서는 도적(盜賊) 임꺽정[林巨正]을 잡아 죽였다.
남침[南琛] 남침은 남만(南蠻) 지역에서 산출(産出)된다는 보옥(寶玉) 이름이다.
남침[覽寢] 혼례 치른 다음날 신랑의 친지들이 일제히 신부집을 방문하면, 그 집에서는 잔치를 베풀게 되니 이를 남침(覽寢)이라 이르고, 가례에 의해 혼사를 치르는 것을 진친영(眞親迎)이라 이르고, 혼례 치른 이튿날 신부가 시부모 뵙는 것을 반친영(半親迎)이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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