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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진고[內司陳告]~내산[內山]~내삼원[內三院]~내삼청[內三廳]


내사진고[內司陳告]  진고는 노복(奴僕)이 주인의 비행(非行)을 내수사(內需司)에 고발하는 것을 말하는데, 노복이 주인을 무고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큰 폐단이 되었다.

내사책자[內賜冊子]  궁중에서 임금이 하사한 책자를 이른다.

내사황감[內史黃甘]  내사는 회계내사(會稽內史)를 지낸 왕희지를 말하고 황감은 그의 황감첩(黃甘帖)을 말한다.

내산[內山]  금강산 비로봉 서쪽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윤휴(尹鑴)의 백호전서(白湖全書) 권34 풍악록(楓岳錄)에 “비로봉 서쪽은 내산이라고 하는데, 바위가 우뚝우뚝 서있고 서풍을 맞으며 석양을 받기 때문에, 나무들이 그리 자라지 못한다. 비로봉 동쪽은 바위 사이로 흙이 꽤 많고, 아침 해가 비치는데다 바다가 가까이 있어 그 기운까지 받기 때문에,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해를 가리고 구름 위까지 치솟아 있는데, 그 쪽은 외산이라고 한다.[毘盧以西, 謂之內山, 山骨矗立, 迎西風而受夕日, 松檜不甚長大. 毘盧以東, 則山間石土脈頗厚, 朝日照之而近襲海氣, 萬目茁壯, 翳日干雲, 謂之外山.]”라고 하였다.

내산[萊山]  동래(東萊)의 고호로, 장산국(萇山國) 혹은 내산국(萊山國)이라고도 하였다. 신라가 점유하여 거칠산군(居漆山郡)을 두었다가 경덕왕(景德王)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졌다.

내삼원[內三院]  청(淸) 나라 초기에 설치한 관서(官署) 이름이다. 즉 내국사원(內國史院)・내굉문원(內宏文院)・내비서원(內祕書院)을 말하는데, 이 3원의 각장(各長)에는 태학사(太學士)를 두었다. 내국사원(內國書院)에서는 조령(詔令)을 기록하고 어제(御製)의 문자(文字)를 수장(收藏)하며 사서(史書)와 실록(實錄) 등을 편찬하는 일을 관장하고, 내굉문원에서는 역대 행사(歷代行事)의 선악(善惡)을 풀이하여 어전(御前)에 진강(進講)하는 일을 관장하였으며, 내비서원에서는 외국 왕래(外國往來)의 문서(文書)를 짓고 각 역소(役所)의 소장(疏狀)을 기록하며 제문(祭文)을 짓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내삼천외팔백[內三千外八百]  경관(京官)이 삼천 명, 외관(外官)이 팔백 명이라는 뜻으로, 문무(文武) 백관(百官)이 의장을 갖추고 일당에 모임을 이르는 말이다.

내삼청[內三廳]  내삼청은 내금위(內禁衛), 겸사복(兼司僕), 우림위(羽林衛)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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