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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경취귀[內史慶醉歸]~내사낙사정[內史樂死情]~내사용유일[內事用柔日]


내사경취귀[內史慶醉歸]  내사(內史) 석경(石慶)이 술에 취해 귀가하다. 사기(史記) 만석군열전(萬石君列傳)에 보이는 구절이다. 내사(內史)는 관직 이름이며, 석경은 한(漢)나라 때 만석군(萬石君) 석분(石奮)의 넷째 아들이다. 석경이 하루는 술에 취해 귀가하면서 마을 입구에서 수레를 내리지 않고 그대로 타고 들어오자, 만석군은 마을의 어른들이 달려오는 수레를 피하는데 젊은 내사가 수레에 편히 앉아 있었다는 것 때문에 노여워하였고, 결국 석경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사죄한 뒤에야 용서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103 萬石君列傳>

내사기[內賜記]  임금이 신하에게 특별히 하사한 책의 표지 뒷장에 적는 기록이다.

내사낙사정[內史樂死情]  내사의 편히 죽을 마음. 왕희지(王羲之)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내사는 왕희지가 회계내사(㑹稽内史)를 역임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어정연감유함(御定淵監類函) 권307에 “진나라 왕희지가 관직을 버리고 동토의 인사들과 함께 산수에서 주살질하고 낚시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또 도사 허매와 함께 복식을 수행하여 좋은 약초를 두루 캐기 위해 유명한 산을 유람하고 푸른 바다에 배를 띄웠는데,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즐겁게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晉王羲之去官, 與東土人士, 營山水弋釣之娛. 又與道士許邁, 共修服食, 徧采名藥, 遊名山泛滄海, 歎曰, 我當以樂死.]”는 내용이 있다.

내사령이덕림[內史令李德林]  수서(隋書) 이덕림전(李德林傳)에 “이덕림(李德林)은 자(字)가 공보(公輔)로 박릉군(博陵郡) 안평현(安平縣) 사람이다. 중서시랑(中書侍郎)을 제수받자 북제(北齊)의 주군(主君)이 문림관(文林館)으로 불러들였으며, 다시 영을 내려 황문시랑(黃門侍郎) 안지추(顔之推)와 함께 판문림관사(判文林館事)로 기용하였다. 고조(高祖)가 고명(顧命)을 받을 때 승상부(丞相府) 속관(屬官)이 되었으며, 즉위하는 날 내사령(內史令)을 제수받았다.”고 하였다.

내사료[內史廖]  내사(內史)는 벼슬 이름이고, 료(廖)는 왕자료(王子廖)이다.

내사별제[內司別提]  내사(內司)는 궁중에서 쓰는 쌀, 베, 잡물과 노비(奴婢) 따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이다. 1466년(세조12)에 내수소(內需所)의 격을 올려 이 이름으로 하였다. 별제(別提)는 종6품 벼슬이다.

내사별제[內司別提]  내수사에 딸린 6품 별제(別提) 벼슬의 하나가 경복장(景福將)이다. 내수사는 왕실의 재정과 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다.

내사용유일[內事用柔日]  내사에는 유일을 씀.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 공영달의 소에 따르면, 내사(內事)는 출행(出行)이나 사냥·정벌과 같은 교외(郊外)의 일과 상대적으로 쓰는 말로 관혼상제(冠婚喪祭)와 같은 교내(郊內)의 일을 이르며, 유일(柔日)은 천간(天干)의 우일(偶日)이라는 뜻으로 을(乙)·정(丁)·기(己)·신(申)·계(癸)일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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