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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柳강남류 / 강남버들 / 鄭夢周정몽주


江南柳江南柳[강남류강남류]          강남 버들이야 강남의 버들이야

春風裊裊黃金絲[춘풍뇨뇨황금사]   봄바람에 하늘하늘 황금실 늘였네

江南柳色年年好[강남류색년년호]   강남의 버들 빛이야 매년 좋지만

江南行客歸何時[강남행객귀하시]   강남의 나그네는 언제나 돌아가나

蒼海茫茫萬丈波[창해망망만장파]   아득한 푸른 바다 파도는 만 길

家山遠在天之涯[가산원재천지애]   고향 땅은 아득히 하늘 닿은 끝

天涯之人日夜望歸舟[천애지인일야망귀주]   의지가지없이 밤낮 배를 보며

坐對落花空長嘆[좌대낙화공장탄]   지는 꽃 보고 앉아 길게 탄식하네

空長嘆但識相思苦[공장탄단식상사고]   장탄식에 그리워 괴로움을 알고

肯識此間行路難[긍식차간행로난]   그 간 세상살이 어려웠음도 알겠네

人生莫作遠游客[인생막작원유객]   인생 살며 부디 먼 길 나그네 되지마오

少年兩鬢如雪白[소년양빈여설백]   소년의 양 귀밑머리 눈처럼 희어졌네

<江南柳강남류 / 강남의 버들 / 鄭夢周정몽주 : 東文選동문선, 圃隱集포은집, 海東繹史해동역사>

※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지은 시이다. 동문선(東文選)과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공장탄(空長嘆)이 ‘坐對落花空長嘆’ 한 번으로 되어 있다.


  • 정몽주[鄭夢周]  본관은 영일(迎日). 출생지는 영천(永川). 초명은 몽란(夢蘭) 또는 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운관(鄭云瓘)이다. 어머니 이씨(李氏)가 난초화분을 품에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리는 꿈을 꾸고 낳았기 때문에 초명을 몽란(夢蘭)이라 했다. 뒤에 몽룡(夢龍)으로 개명하였고 성인이 되자 다시 몽주(夢周)라 고쳤다. 1360년에는 문과에 합격하였고, 1364년에 여진족 정벌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1372년에는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1374년에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올랐는데, 당시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元)나라와 화친하자는 정책에 반대하여 원나라와의 외교 단절을 주장하다가 1376년 언양으로 귀양 갔다. 1377년에 풀려나와 사신으로 일본 규슈에 건너가, 왜구의 침략을 항의하고, 잡혀 있던 고려 백성 수백 명을 데리고 왔다. 1380년 조전원수로 있으면서 이성계(李成桂)와 함께 왜구를 토벌하였고, 1384년 정당문학에 올라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가서 긴장 상태에 있던 외교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여러 벼슬을 거쳐 1389년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恭讓王)을 왕으로 세웠다. 1392년에 조준(趙浚)과 정도전(鄭道傳)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모시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고 끝까지 고려 왕조를 지키려다가 개성 선죽교에서 이방원(李芳遠)의 수하에게 살해당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 게을리 하지 않았고 성리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당시 고려의 주자집주(朱子集註)에 대한 정몽주의 강설이 사람의 의표를 찌를 정도로 뛰어나 모두들 놀라워했다. 그러다가 송나라 유학자 호병문(胡炳文)의 사서통(四書通)이 전해지면서 그 내용이 정몽주의 강설내용과 서로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고 모두 탄복하였다고 한다. 정몽주의 시문은 호방하고 준결하며 시조 단심가(丹心歌)는 정몽주의 충절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후세에까지 많이 회자되고 있다. 문집으로 포은집(圃隱集)이 전하고 있다.
  • 뇨뇨[裊裊]  연기·냄새 따위가 모락모락 오르는 모양. 가늘고 부드러운 것이 흔들리는 모양. 하늘거리는 모양. 소리가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모양. 가지가 바람에 간들거리는 모양. 은은하다. 뇨뇨(嫋嫋).
  • 망망[茫茫]  아득하다. 망망하다. 망막하다. 요원하다. 까마득하다. 한없이 넓다. 희미하다. 넓고 멀어 아득한 모양. 어둡고 아득함. 아득해 알지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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