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갈려 아득한 십년의 세월 / 十年生死兩茫茫[십년생사양망망]
생각지 않으려도 / 不思量[불사량]
잊기 어려워 / 自難忘[자난망]
천리 멀리 외로운 무덤 / 千里孤墳[천리고분]
처량하기 이를 데 없어라 / 無處話淒涼[무처화처량]
설사 만난다 해도 알지 못하리 / 縱使相逢應不識[종사상봉응불식]
먼지 얼굴 가득하고 / 塵滿面[진만면]
귀밑머리 서리 같으니 / 鬢如霜[빈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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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들어 꿈속에 홀연 찾은 고향 / 夜來幽夢忽還鄕[야래유몽홀환향]
작은 집 창가에 / 小軒窗[소헌창]
단정히 머리 빗고 있었네 / 正梳妝[정소장]
서로 돌아볼 뿐 말은 못하고 / 相顧無言[상고무언]
오직 천 줄기 눈물만 하염없이 / 惟有淚千行[유유루천행]
해가 가도 생각수록 애끊는 곳 / 料得年年腸斷處[요득년년장단처]
달 밝은 밤 / 明月夜[명월야]
당신 무덤 잔솔펀더기 / 短松岡[단송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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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城子강성자: 乙卯正月二十日夜記夢을묘정월이십일야기몽 / 을묘년 정월 이십일 밤의 꿈을 적다 / 蘇軾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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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식(蘇軾)은 19살 때 16살 된 왕불(王弗)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미주(眉州) 청신(靑神) 사람인 향공진사(鄕貢進士) 왕방(王方)의 딸로 매우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소식과 부부가 된 뒤에는 항상 공부하는 소식의 곁을 지켰고, 소식이 책을 읽다 뜻이 막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그를 일깨워주었다고 한다. 총명한데다 침착하기까지 했던 그녀는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는 소식의 성정을 잘 알고, 소식이 집에서 찾아온 사람을 만날 때마다 휘장 뒤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사람이 돌아간 뒤 소식에게 친교 또는 단교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막후청언幕後聽言]. 왕불은 남편과 6살 난 어린 자식을 두고 2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결혼한 지 11년이 되지만 소식이 관직 때문에 항상 떨어져 있어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소식은 “네 아내는 너를 따라 간난을 함께 하였으니, 훗날 시어머니 곁에 묻어주도록 하라.”는 부친 소순(蘇洵)의 권유에 따라, 이듬해 아버지 소순까지 세상을 뜨자 천장하여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모셔 고향 사천성 서쪽 경계지역인 아미산 부근 미산진의 어머니 무덤 곁에 묻고, 그 주변에 3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10년 후 어느날 꿈에서 아내를 만난 소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깨어나 그 애절한 마음으로 시 한 수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시 강성자(江城子) 기몽(記夢)이라 한다. 참고로 소식이 지은 망처왕씨묘지명(亡妻王氏墓誌銘)에 “治平二年五月丁亥, 趙郡蘇軾之妻王氏, 卒于京師. 六月甲午, 殯于京城之西. 其明年六月壬午, 葬於眉之東北彭山縣安鎮鄉可龍里先君先夫人墓之西北八步. 軾銘其墓曰:君諱弗, 眉之青神人, 鄉貢進士方之女. 生十有六年, 而歸于軾. 有子邁. 君之未嫁, 事父母, 既嫁, 事吾先君、先夫人, 皆以謹肅聞. 其始, 未嘗自言其知書也. 見軾讀書, 則終日不去, 亦不知其能通也. 其後軾有所忘, 君輒能記之. 問其他書, 則皆略知之. 由是始知其敏而靜也. 從軾官于鳳翔, 軾有所為於外, 君未嘗不問知其詳. 曰: 「子去親遠, 不可以不慎.」 日以先君之所以戒軾者相語也. 軾與客言於外, 君立屏間聽之, 退必反覆其言曰: 「某人也, 言輒持兩端, 惟子意之所向, 子何用與是人言.」 有來求與軾親厚甚者, 君曰: 「恐不能久. 其與人銳, 其去人必速.」 已而果然. 將死之歲, 其言多可聽, 類有識者. 其死也, 蓋年二十有七而已. 始死, 先君命軾曰: 「婦從汝于艱難, 不可忘也. 他日汝必葬諸其姑之側.」 未期年而先君沒, 軾謹以遺令葬之. 銘曰:君得從先夫人于九原, 余不能. 嗚呼哀哉!余永無所依怙. 君雖沒, 其有與為婦何傷乎. 嗚呼哀哉!”라고 하였다.
-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 송(宋) 신종(神宗)・철종(哲宗) 때의 문인으로 미주(眉州) 미산(眉山: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미산眉山) 사람이다. 자는 자첨(子瞻)・화중(和仲)이며,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정상재(靜常齋)・설랑재(雪浪齋)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벼슬은 항주통판(杭州通判)・항주지주(抗州知州) 등을 지냈는데 치적이 있었고,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예부상서(禮部尙書)에 이르렀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여 좌천되었으나 뒤에 철종(哲宗)에게 중용(重用)되었다. 소순(蘇洵)의 아들이자 소철(蘇轍)의 형으로 이 삼부자를 삼소(三蘇)라 부르는데 각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자리를 차지하였다. 시는 송대(宋代)의 제1인자로 꼽히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하였다. 사(詞)에서는 신기질(辛棄疾)과 함께 소신(蘇辛)으로, 시에서는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되었으며, 그림에서도 황정견(黃庭堅), 미불(米芾), 채양(蔡襄) 등과 함께 송사가(宋四家)로 불렸다. 또한 경사(經史)에 통하여 그의 학파를 촉파(蜀派)라 한다. 그의 시 적벽부(赤壁賦)가 유명하고, 저서에 역서전(易書傳), 논어설(論語說), 구지필기(仇池筆記), 동파칠집(東坡七集), 동파악부(東坡樂府), 동파지림(東坡志林), 동파전집(東坡全集) 등이 있다.
- 강성자[江城子] 강성자(江城子)는 사패(詞牌)의 명칭이다. 사(詞)란 원래 노래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먼저 곡조 즉, 사패(詞牌)가 있고, 그 곡조에 따라 가사 즉, 사구(詞句)를 채워 넣는 형식의 글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악보가 있고 거기에 맞춰 지은 가사라고 하겠다. 이 시의 제목으로 설명하자면 강성자(江城子)라는 원래 있던 곡조에 소식(蘇軾)이 ‘을묘년 정월 이십일 밤에 꾼 꿈[乙卯正月二十日夜記夢]’을 가사로 붙인 것이다.
- 망망[茫茫] 아득하다. 망망하다. 망막하다. 요원하다. 까마득하다. 한없이 넓다. 희미하다. 넓고 멀어 아득한 모양. 어둡고 아득함.
- 사량[思量] 생각하여 헤아림. 고려하다. 깊이 생각하다. 깊이 헤아리다. 그리워하다. 걱정하다. 염려하다.
- 처량[淒涼] 쓸쓸하다. 처량하다. 슬프고 애처롭다. 처참하다.
- 종사[縱使] 가령. 설령~하더라도. 설사 ~하더라도. 설사 ~일지라도. 안지추(顔之推)의 안씨가훈(顔氏家訓) 양생(養生)에 “설사 신선이 된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죽게 된다.[縱使得仙, 終當有死.]”라고 하였다.
- 요득[料得] 헤아려 얻음. 헤아려 앎. 짐작하다. 예상하다. 헤아려 생각하다. 예측하다. 두보(杜甫)의 시 두견행(杜鵑行)에 “푸른 하늘이 변화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만사가 반복됨이 어찌 이유가 없겠는가.[蒼天變化誰料得 萬事反覆何所無]”라고 하였다.
- 장단[腸斷] 몹시 슬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함. 창자가 끊어질 듯 비통하다. 애끊다. 몹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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