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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맥[路脈]~노면[露冕]~노모멸렬[鹵莽蔑劣]~노목궤[櫨木櫃]


노매파[盧梅坡]  남송(南宋)의 시인. 그 출신과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매화 시 몇 편이 전해올 뿐입니다. 매파(梅坡)도 그의 이름이나 자가 아니라 호일 것으로 추정된다.

노맥[路脈]  계속 이어져서 서로 통하는 길로, 전하여 문장(文章)의 맥락(脈絡)을 뜻한다.

노면[露冕]  면류관을 드러냄. 지방관으로 뛰어난 치적을 내는 것을 말한다. 후한 때 곽하(郭賀)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으면서 선정(善政)을 베풀어 백성들이 칭송하자, 현종(顯宗)이 삼공(三公)의 의복과 면류(冕旒)를 내리고, 그가 경내를 순행할 때 수레의 휘장을 걷어 공복 입고 면류관 쓴 모습을 백성들이 보고 모두 영광스럽게 여기게 한 데서 나온 말이다. <後漢書 卷26 郭賀列傳>

노면[露冕]  임금의 은총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 곽하(郭賀)가 일찍이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나가서 선정을 베풀었던바, 한번은 명제(明帝)가 순수(巡狩)차 남양(南陽)에 이르러 그 사실을 알고는 깊이 감탄한 나머지, 특별히 그에게 삼공(三公)의 옷을 주고 면류관(冕旒冠)을 하사하여, 그가 부내(部內)를 순찰할 때는 수레의 장막을 환히 걷어서 면류관을 백성들이 다 보게 하여 그의 덕을 드러낼 수 있도록 했던 데서 온 말이다. <益都耆舊傳>

노모멸렬[鹵莽蔑劣]  거칠고 졸렬하다. 소홀하고 용렬하다. 행동이 거칠고 무책임하다. 노무(鹵莽)는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요, 멸렬(滅裂)은 공부를 경박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노목공무인자사지측 칙장자거지[魯穆公無人子思之側 則長者去之]  노 목공(魯穆公)은 자사(子思) 곁에 자신의 성의를 말해줄 사람이 없으면 장자(長者)가 떠나갈까 염려하였다. <蘇軾 德威堂銘> 이에 관한 내용은 맹자(孟子) 공손축 하(公孫丑 下)에 “옛날에 노 무공(魯繆公)은 자사의 곁에 자기의 성의를 전달할 사람이 없으면 자사께서 떠나가실까 염려하여 자사를 편안하게 여기지 못하였다.[昔者 魯繆公無人乎子思之側 則不能安子思]”라고 보이는데, 주자(朱子)의 맹자집주(孟子集註)에 “무공(繆公)이 자사(子思)를 존경하고 예우하여 항상 사람으로 하여금 자사를 모시고 보살피게 해서 자신의 성의를 그 곁에 전달하여야, 자사께서 안심하고 머무실 것으로 여긴 것이다.”라고 주(注)하였다. 무공(繆公)은 전국시대 노(魯)나라의 군주인데, 목공(穆公)으로 표기하기도 하며, 자사(子思)는 공자(孔子)의 손자인 공급(孔伋)으로 자사(子思)는 그의 자(字)이다.

노목궤[櫨木櫃]  노(櫨)나무로 만든 네모진 궤라는 뜻으로, 융통성(融通性)이 조금도 없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조선말 학자 홍만종(洪萬鐘)의 수필집 순오지(旬五志)에 “옛날 딸을 둔 어느 노인이 검양옻나무 궤[櫨木櫃]를 짜서 남몰래 쌀 쉰닷 말을 넣어 두고 이것을 알아맞히는 사람을 사위로 삼기로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이를 맞히는 사람이 없자, 시집 못갈 것을 걱정한 딸이 장사꾼 총각에게 그 답을 미리 알려주어 사위가 되게 하였다. 이 후로 사위는 장인이 묻기만 하면 ‘노목궤, 쌀 쉰닷 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노목시지[怒目視之]  성난 눈으로 봄을 이른다.

노목절치[怒目切齒]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다.

노묘[魯墓]  공자가 노(魯) 나라에서 부친의 묘소를 찾아 모친을 합장(合葬)하고 먼저 돌아왔는데, 때마침 폭우가 쏟아지자 제자들이 그 봉분을 수리하고 늦게 도착했던 고사가 전한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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