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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삭[魯削]~노산[蘆山]~노산노오[盧山盧敖]~노산자[奴產子]


노삭[魯削]  제(齊)나라의 변사(辯士) 순우곤(淳于髡)이 맹자에게 “노 목공(魯繆公) 때 공의자(公儀子)가 정사(政事)를 돌보고 자유(子柳)・자사(子思)가 신하였는데도 노나라 땅이 더욱 심히 깎였으니[魯之削也滋甚], 현자(賢者)가 나라에 보탬 되지 않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그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노산[蘆山]  노령산을 말한다.

노산[魯山]  당나라 때 하남(河南) 사람 원덕수(元德秀)를 말한다. 원덕수의 자는 자지(紫芝)이다. 진사에 급제하였고, 노산령(魯山令)이 되어 은혜로운 정사를 베풀었다. 육혼산(陸渾山)에 은거하다가 세상을 마쳤는데, 문인들이 문행선생(文行先生)이라는 사시(私諡)를 바쳤다. 천하에서 그의 행실을 높이 여겨서 원노산(元魯山)이라고 일컫는다. 사람됨이 청결하고 순박하며 가식이 적어, 같은 고을의 방관(房琯)이 매양 원덕수를 보고 “자지의 얼굴을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명리(名利)의 마음이 사라지게 한다.[見紫芝眉宇, 使人名利之心都盡.]”라고 하였다. <新唐書 卷194 元德秀列傳>

노산[魯山]  당(唐)나라 때 노산 영(魯山令)을 지낸 원덕수(元德秀)를 가리킨다. 자는 자지(紫芝)이며 하남(河南) 사람이다. 원덕수는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명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산수와 풍류를 즐기며 지냈다. 노산 영으로 있으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고, 벼슬에서 돌아올 때는 짐수레를 타고 왔다. 만년에 육혼산(陸渾山)에 은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사람됨이 청결하고 순박하며 청빈하게 삶을 살아 죽은 뒤에는 단지 이부자리와 밥그릇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舊唐書 卷190下 元德秀列傳>

노산[魯山]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으로, 사육신(死六臣)이 주륙된 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었다.

노산고[盧山高]  구양수(歐陽脩)가 동년(同年)인 유중윤(劉中允)이 벼슬을 버리고 여산(盧山)의 남쪽으로 옮겨 가니, 구양공이 그 절개를 높이 여겨 이 시를 지어 찬미하였다.

노산노오[盧山盧敖]  노산(盧山)은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 남쪽에 있는 산으로 안개와 폭포로 유명하다. 노오(盧敖)는 동파(東坡)가 지은 노산오영(盧山五咏) 노오동(盧敖洞) 시(詩)에 스스로 주(注)하기를 “도경(圖經)에 ‘노오(盧敖)는 진(秦)나라 박사(博士)였는데 이 산으로 피난하여 마침내 도(道)를 얻었다.’라고 한다.”고 하였다.

노산묘[魯山墓]  영월(寧越)에 있는 조선조 제6대 왕 단종(端宗)의 무덤이다. 숙부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찬탈되어 노산군에 봉해졌다. 그후 1698년(숙종 24)에 복위(復位)되고 묘효(廟號)가 추증되었다. 능호는 장릉(莊陵)이다.

노산자[奴產子]  노산자는 노복(奴僕)의 자손으로 대대로 노복이 되는 자를 말한다. 가생자(家生子)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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