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신[盧守愼] 노수신(盧守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봉노인(茹峰老人), 시호는 문의(文懿)이며, 뒤에 문간(文簡)으로 고쳤다. 저서로 소재집(蘇齋集) 13권 8책이 있다. 소재집에 선조 19년(1586) 72세 되던 해인 11월 15일에 노수신이 직접 지었다는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이 실려 있다. <蘇齋集 卷10 暗室先生自銘>
노수애협이심[路粹隘狹已甚] 노수(路粹)는 속이 매우 좁음. 위지(魏志) 왕찬전(王粲傳)에 “영천(潁川)의 한단순(邯鄲淳)과 번흠(繁欽), 진류(陳留)의 노수(路粹), 패국(沛國)의 정의(丁儀)와 정이(丁廙), 홍농(弘農)의 양수(楊修), 하내(河內)의 순위(荀緯) 등도 문장이 아름다웠지만 7인의 반열에 들지는 못하였다.”라 하였고, 배송지(裴松之) 주(注)에서 전략(典略)을 인용하여 “노수(路粹)는 자(字)가 문울(文蔚)로서 진림(陳琳), 완우(阮瑀) 등과 함께 기실(記室)을 맡았는데, 지시에 따라 공융(孔融)의 죄를 조목조목 따졌다. 공융( 孔融)이 죽은 후 사람들은 노수(路粹)가 작성한 것을 보고서, 그의 재능을 대단하게 여기고 그의 글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19년에 이르러 대군(大軍)을 따라 한중(閑中)에 갔다가 천민의 나귀 요구 금지법을 위반한 일에 연루되어 처벌을 받아 죽었다.”라 하였다. 어환(魚豢)이 말하기를 “문울(文蔚)은 성격이 상당히 화를 잘 내고 사나웠다.”라고 하였다.
노수욕승부[魯叟欲乘桴] 노수(魯叟)는 공자를 말한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내가 장차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볼까 한다.[道不行乘桴浮于海]”라고 하였다.
노수절량[魯叟絶糧] 노수는 공자(孔子)를 가리키는 말인데, 공자가 진(陳)・채(蔡)의 두 나라 사이를 지나다가 광도(狂徒)에게 포위를 당하여 7일간이나 식량이 떨어졌던 일을 말한다. <論語 衛靈公>
노수제인녀악지귀 이공자행[魯受齊人女樂之歸 而孔子行] 노(魯)나라가 제(齊)나라에서 보낸 여자 악사(樂士)를 받아들이자 공자(孔子)가 떠나감.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제(齊)나라 사람이 여자 악사를 보냈는데, 계환자(季桓子)가 받고서 3일 동안 조회하지 않자, 공자(孔子)가 떠나갔다.[齊人歸女樂 季桓子受之 三日不朝 孔子行]”라고 하였다.
노수철환[魯叟轍環] 노나라 늙은이는 곧 공자(孔子)를 이르는 말로, 공자가 세상에 도(道)를 행하기 위하여 일생 동안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던 일을 말한다.
노수한묘수[魯叟恨苗秀] 노수는 공자를 이르는데, 공자가 학문을 시작만 해 놓고 이루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 이르기를 “싹만 나오고 꽃을 피우지 못한 자가 있고, 꽃만 피우고 결실을 못한 자도 있다.[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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