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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말실[魯禮末失]~노오구해[盧敖九垓]~노오로[老吾老]~노옥[盧屋]


노예말실[魯禮末失]  노례(魯禮)는 노(魯)나라의 예(禮). 말실(末失)은 말세의 실례, 즉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나 세태를 가리킨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소렴의 전(奠)을 서쪽에서 행하는 것은 노나라 예가 말세에 잘못된 것이다.[小斂之奠在西方魯禮之末失也]”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말세에 예를 잃었음을 말한다.[末世失禮之為]”라고 하였다.

노오[盧敖]  전국시대 때 연(燕)나라 사람으로 천하를 주유하다가 몽곡산(蒙谷山)에 이르렀을 때, 나이가 든 한 도인이 바람을 맞아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노오가 함께 놀 것을 청하자 그가 웃으면서 “나는 한만(汗漫)과 구천 밖에서 만나기로 먼저 약속했기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고 하더니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노오[盧敖]  본디 연(燕)나라 사람인데, 진 시황(秦始皇)이 그를 불러 박사(博士)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신선(神仙)을 구하게 하였으나, 그는 한번 가서 돌아오지 않고 노산(盧山)에 은거하다가 선인(仙人) 약사(若士)를 만나서 뒤에 신선이 되어 갔다고 한다. <淮南子 道應訓>

노오구해[盧敖九垓]  노오가 북해(北海)에 노닐다 한 선비를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내가 구해(九垓) 밖에서 한만(汗漫)과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오래 머무를 수 없다.” 하였다. <淮南子 道應訓>

노오로[老吾老]  맹자(孟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내 집의 노인을 노인으로 잘 대접하여 남의 늙은이까지 잘 대접하고, 내 집의 어린이를 어린이로 사랑해서 남의 어린이까지 사랑하게 된다면, 천하를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노오생[盧敖生]  노오는 진 시황(秦始皇) 때 사람으로, 진시황이 그를 박사(博士)로 삼고 신선을 구하게 하였는데, 그는 노산(盧山)에 은거하다가 뒤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에 “노오는 북해(北海)에서 노닐고 태음(太陰)을 경유하여 현궐(玄闕)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노옥[盧屋]  노옥은 노동(盧仝)의 집이라는 뜻이다. 노동은 당(唐)나라 범양(范陽) 사람으로 호는 옥천자(玉川子)이다. 가정이 빈한하였으나 독서하기를 좋아하여 처음에 소실산(少室山)에 숨어 살며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일찍이 월식시(月食詩)를 지어 그 당시를 풍자하였는데, 한유(韓愈)가 잘 지었다고 칭찬하였다. <新唐書 卷176 盧仝列傳> 또 한유가 노동에게 부친 시에 “옥천선생이 낙성의 안에 사는데 허물어진 집 몇 칸밖에 없다네.[玉川先生洛城裏 破屋數間而已矣]”라고 하였다.

노옥계[盧玉溪]  노진(盧禛)으로, 자는 자응(子膺)이며, 옥계는 그의 호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조선 중기 명종과 선조 연간에 주로 활약한 문신으로, 30여 년 동안 청현(淸顯)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기대승(奇大升), 노수신(盧守愼), 김인후(金麟厚) 등과 도의(道義)로 교유하였다. 효로써 정려(旌閭)가 세워졌고, 남원(南原)의 창주서원(滄洲書院), 함양(咸陽)의 당주서원(溏洲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에 옥계집(玉溪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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