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련[魯仲連] 노중련(魯仲連)은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로, 노련(魯連)이라고도 칭한다. 그는 항상 남을 위해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었지만 보수는 받지 않았다. 사마천(司馬遷)은 노중련(魯仲連)에 대하여 “기위(奇偉)하고 출중한 획책(劃策)은 좋아하였으나 관직(官職)은 맡으려고 하지 않았다.[好奇偉俶儻之劃策 而不肯仕官任職]”고 평하였다.
노중련[魯仲連] 노중련(魯仲連)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이다. 그가 조(趙)나라에 가 있을 때 진(秦)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서울인 한단(邯鄲)을 포위했는데, 이때 위(魏)나라가 장군 신원연(新垣衍)을 보내 진나라 임금을 천자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노중련이 “저 진(秦)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자칭하고 죄악으로써 천하에 정사를 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을지언정, 내가 차마 그 백성은 될 수가 없다.[彼卽肆然而爲帝 過而爲政於天下 則連有蹈東海而死耳 吾不忍爲之民也]”고 하니, 진나라 장군이 이 말을 듣고 군사를 후퇴시켰는데, 마침 위(魏)나라가 조나라를 구원하여 한단의 포위가 풀렸다. 이에 조나라가 노중련을 봉하려고 하였는데, 노중련이 사양하기를 “천하의 선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남을 위해 환난을 없애고 분란을 해소하고도 취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史記 卷83 魯仲連鄒陽列傳>
노중련[魯仲連] 노중련(魯仲連)은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이다. 그는 특이하고 빼어난 계책을 잘 냈으나, 얽매여 사는 것을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고 조(趙)나라에 은거하고 있었다. 평원군(平原君)은 조(趙)나라 공자(公子)로 이름이 승(勝)인데 선비를 좋아하여 문하(門下)에 식객(食客)이 수천 명에 이르렀다. 진(秦)나라 장군 왕흘(王齕)이 조(趙)나라를 공격하여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여러 제후들이 진(秦)나라를 두려워하여 감히 조(趙)나라를 구원하지 못하였다. 위(魏)나라의 공자인 신릉군(信陵君) 무기(無忌)는 평원군(平原君)의 처남이었으므로 조왕(趙王)이 평원군(平原君)으로 하여금 위(魏)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게 하자, 위(魏)나라의 안리(희)왕[安釐(禧)王]은 장군 진비(晉鄙)에게 군대를 주어 조(趙)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그러나 진 소왕(秦昭王)이 사신을 보내 “제후국 가운에 감히 조(趙)나라를 구원하는 나라가 있으면 먼저 그 나라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자, 위왕(魏王)이 두려워하여 진비(晉鄙)로 하여금 탕음(蕩陰)에 주둔한 채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게 하였다. 위(魏)나라에서는 신원연(新垣衍)이란 변사(辯士)를 조(趙)나라에 보내 진(秦)나라 임금을 황제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는 계책을 고하게 하였는데, 이때 이 말을 들은 노중련(魯仲連)이 “포악한 진(秦)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칭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東海)에 빠져 죽겠다.”라고 하며 여러 제후들을 동원할 수 있는 계책을 설명하니, 신원연(新垣衍)은 “내가 다시는 진(秦)나라를 황제로 섬기자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고 노중련(魯仲連)에게 절하고 떠나갔다. 신릉군(信陵君) 무기(無忌)가 후영(侯嬴)의 계책을 써서 위왕(魏王)의 침실에 있는 인부(印符)를 훔쳐 가지고 위군(魏軍)의 진영(陣營)으로 달려가 진비(晉鄙)를 죽인 다음, 스스로 장군이 되어 위군(魏軍)을 거느리고 마침 조(趙)나라를 구원하러 온 초군(楚軍)과 함께 왕흘(王齕)의 진군(秦軍)을 대파하여 한단(邯鄲)의 포위를 풀었다. 전쟁이 끝나자 평원군(平原君)이 노중련(魯仲連)에게 벼슬을 주고자 하였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평원군(平原君)이 다시 술자리를 베풀고 천금으로 노중련(魯仲連)을 위로하고자 하였으나, 노중련(魯仲連)은 이마저도 받지 않고 떠나갔다.
노중련[魯仲連]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로, 뛰어난 재주를 지녔으나 얽매여 사는 것을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고 조(趙)나라에 은거한 인물이다.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여러 제후들이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감히 조나라를 구원하지 못하였다. 위(魏)나라의 안희왕(安釐王)은 조나라를 구원하고자 군대를 보냈는데, 진나라가 위협하자 위군은 진군하지 못하였다. 위나라에서는 신원연(新垣衍)이라는 변사(辯士)를 조나라에 보내, 진나라 임금을 황제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는 계책을 말하게 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노중련이 “포악한 진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칭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겠다.”라고 하니, 여러 제후들이 이 말을 듣고 연합하여 진나라 군대를 패퇴시켰다. 제(齊)나라 장군 전단(田單)이 제왕(齊王)에게 천거하여 벼슬을 내리려 하자, 노중련은 “나는 부귀하고서 남에게 굽히며 살기 보다는 차라리 빈천하면서 세상을 가볍게 여기고 마음대로 살겠다.[吾與富貴而詘於人, 寧貧賤而輕世肆志焉.]”라고 하고는 바닷가로 몸을 피하였다. <史記 卷83 魯仲連鄒陽列傳>
노중련자[魯仲連子]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 노중련(魯仲連)・노련(魯連)이라고도 한다. 남의 어려움을 해소해주고도 상을 받지 않은 고사(高士)이다. 조(趙)・위(魏)를 설득하여 한단(邯鄲)에서 진(秦)의 야욕을 꺾었고, 연(燕)의 장군을 설득하여 요성(聊城)을 제(齊)나라에 돌려주게 하였다. <戰國策 齊策 6>・<史記 魯仲連鄒陽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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