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왕(梁王) 위영(魏嬰)이 범대(范臺)에서 제후(諸侯)들과 주연을 벌였다.
한창 술기운이 오르자 노군(魯君)에게 술을 권하였다. 노군은 일어서서 자리를 피하며 조심스레 경계의 말을 아뢰었다.
“옛적에 제녀(帝女)가 의적(儀狄)에게 술을 빚게 하였더니 맛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우왕(禹王)에게 바치니 우왕이 마셔보고는 맛이 좋다고 여기면서도 끝내 의적을 멀리하며 그 미주(美酒)를 끊어 버리고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그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한 밤에 출출함을 느끼자, 역아(易牙)가 졸이고 굽고 하여 오미(五味)를 갖추어 올렸더니, 환공이 배불리 먹고 아침까지 푹 잤습니다. 그리고는 ‘후세에 반드시 맛 때문에 그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진(晉)나라 문공(文公)은 남지위(南之威)라는 절세 미녀를 얻고서 3일 동안 조회(朝會)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끝내 남지위를 물리쳐 멀리하면서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여색 때문에 그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초왕(楚王)은 강대(强臺)에 올라 붕산(崩山)을 바라보니, 동쪽은 장강(長江)이요, 서쪽은 동정호(洞庭湖)인지라 하염없이 바라보며 소요(逍遙)하는 즐거움이 죽음도 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끝내는 강대에 다시 오르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면서 말하기를 ‘뒤에 반드시 높은 누대(樓臺)와 화려하게 꾸민 연못 때문에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주군(主君)의 술잔 속에 있는 술은 의적(儀狄)의 술이요, 주군이 드시는 것은 역아(易牙)의 요리요, 왼쪽에 낀 백대(白台)와 오른쪽의 여수(閭須)는 남지위(南之威)와 같은 미색(美色)이며, 앞의 협림(夾林)과 뒤의 난대(蘭臺)는 곧 강대(强臺)에서의 즐거움과 같습니다. 이 중에 한 가지만 있어도 나라를 망치기에 족한데, 지금 주군께서는 이 네 가지를 겸하고 계시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양왕(梁王)은 연신 옳은 말이라 찬탄하였다.
<전국책 : 위책(2)[1]>
梁王魏嬰觴諸侯於范臺. 酒酣, 請魯君擧觴. 魯君興, 避席擇言曰: “昔者, 帝女令儀狄作酒而美, 進之禹, 禹飮而甘之, 遂疏儀狄, 絶旨酒, 曰: ‘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 齊桓公夜半不嗛, 易牙乃煎敖(熬)燔炙, 和調五味而進之, 桓公食之而飽, 至旦不覺, 曰: ‘後世必有以味亡其國者.’ 晉文公得南之威, 三日不聽朝, 遂推南之威而遠之, 曰: ‘後世必有以色亡其國者.’ 楚王登强臺而望崩山, 左江而右湖, 以臨彷徨, 其樂忘死, 遂盟强臺而弗登, 曰: ‘後世必有以高臺陂池亡其國者.’ 今主君之尊, 儀狄之酒也; 主君之味, 易牙之調也; 左白台而右閭須, 南威之美也; 前夾林而後蘭臺, 强臺之樂也. 有一於此, 足以亡其國. 今主君兼此四者, 可無戒與!” 梁王稱善相屬. <戰國策 : 魏策(二)[1]>
- 양[梁] 위(魏)나라의 이칭이다.
- 범대[范臺] 위(魏)나라의 누대(樓臺) 이름이다.
- 노군[魯君] 노(魯)나라의 공공(共公)으로 이름은 분(奮)이다.
- 피석[避席] 앉았던 자리에서 물러남. 웃어른에게 공경(恭敬)을 표(表)하기 위(爲)하여 모시던 자리에서 일어남. 윗사람에게 경의를 표시하여 자리를 피하다. 피좌(避座).
- 제녀[帝女] 제(帝)의 딸.
- 의적[儀狄] 하(夏)나라 때 술을 처음 빚은 사람이다.
- 역아[易牙] 제 환공(齊桓公) 때의 주사(廚師: 요리사)이다. 환공(桓公)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아들을 죽여 요리해서 환공(桓公)에게 바쳤다고 한다.
- 역아[易牙] 춘추 때 제(齊)나라 사람의 총신(寵臣)으로 요리를 잘하여 환공(桓公)의 신임을 얻었고, 자기의 자식을 삶아 바쳐서 환공에게 아첨한 인물이다.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치수(淄水)와 민수(澠水) 두 강은 물맛이 전혀 다르나, 섞으면 그 맛을 구별해 내기가 어려운데도 역아가 섞은 두 물의 맛을 구별해 내었다고 한다. 맹자가 이르기를 “맛에 대해서는 천하 사람이 모두 역아를 기준으로 삼았다.[至於味 天下期於易牙]”라고 하였다. <孟子 告子上><列子 說符>
- 남지위[南之威] 춘추(春秋) 오패(五霸) 중의 하나인 진 문공(秦 文公) 때의 미인(美人)이다. 남위(南威)라고도 쓰는데 그것은 고대에 성과 이름 사이에 ‘개지추(介之推)’, ‘궁지기(宮之奇)’처럼 흔히 조자(助字)인 지(之)를 넣었기 때문이다.
- 강대[强臺] 형대(荊臺), 혹은 장화대(章華臺).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감리현(監利縣)에 있다. 초 영왕(楚靈王)이 건립한 누대이다.
- 붕산[崩山] 숭산(崇山).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예현(澧縣)에 있다. 순(舜)임금이 환두(驩兜)를 방축(放逐)한 곳이다.
- 좌강이우호[左江而右湖] 좌는 동쪽을 이르고, 우는 서쪽을 이른다. 강(江)은 장강(長江)을 이르고, 호(湖)는 동정호(洞庭湖)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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