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農師] 농사를 담당하는 관리로, 주(周)나라의 기(棄)를 가리킨다. 기는 요 임금 때 농사가 되고 순 임금 때 후직이 되었다.
농사[農師] 주대(周代)의 관명. 상사(上士)로 농사를 관장하였다. <周禮 地官司徒>
농사포사[農師圃師] 송(宋) 나대경(羅大經)이 찬(撰)한 학림옥로(鶴林玉露) 권6에 “다만 방촌의 땅을 보존하여 자손에게 경작하도록 남겨 준다.[但存方寸地留與子孫耕]”라는 속어(俗語)를 풀이하면서, “이 땅을 갖고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만 다스려도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비록 이 땅을 다스리더라도 다스리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공자와 맹가(孟軻)는 땅을 다스리는 농사이고 포사인 것이다.[有此地而不能治 治而不知其法者 雖治此地 亦猶不治 是故孔子孟軻 治地之農師圃師也]”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방촌지(方寸地) 3자는 마음을 가리킨다.
농사호구제[籠紗護舊題] 송대(宋代)의 명상(名相) 구준(寇準)이 일찍이 섬부(陝府)의 승사(僧舍)에 가 노닐면서 유제(留題)한 시가 있었는데, 뒤에 다시 그 승사에 놀러 가서 보니 그가 예전에 유제했던 시를 푸른 비단으로 잘 싸서 보호하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농산[農山] 공자가 일찍이 북쪽으로 농산(農山)의 위에 올라가 노닐면서 사방을 바라보고 위연히 탄식하며 말하기를 “높은 데에 올라서 아래를 바라보면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여기에 생각을 쓴다면 그 생각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에 “공자가 북쪽으로 농산에서 노닐 적에 자로, 자공, 안연이 뫼시고 있었다.[孔子北遊於農山 子路子貢顔淵侍側]”라고 하였다.
농산[農山] 옛날 공자가 자로(子路)・자공(子貢)・안연(顔淵)과 함께 농산에 올랐을 때 공자가 세 사람에게 각자의 포부를 묻자, 자로는 군대를 지휘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겠다고 하였고, 자공은 전쟁 중인 두 나라 사이에서 외교술을 펼쳐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하였고, 안연은 성스러운 임금을 보필하여 백성에게 오륜을 가르치고 예악으로 인도하여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였는데, 공자가 안연의 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孔子家語 致思>
농산[籠山] 농산은 산을 둘러싼다는 뜻으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일찍이 가야산에 은거했던바, 그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시에 “돌 틈을 거세게 흘러 겹겹산을 쩡쩡 울려라, 지척에서도 사람 말소리 분간을 못하겠네. 항상 시비의 소리가 귀에 닿을까 두려워, 짐짓 흐르는 물로 산을 몽땅 감싸게 했구나.[狂奔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孤雲集 卷1>
농산[隴山] 섬서성(陝西省)의 농현(隴縣)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서쪽 변경의 요해처이다. 농판(隴坂) 또는 농수(隴首)라고도 하며, 흔히 변경의 산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농산[隴山] 육반산(六盤山) 남단의 별칭으로, 중국 섬서성(陝西省)의 농현(隴縣)과 감숙성(甘肅省)의 평량(平涼) 일대에 깔려 있는데, 산세가 험난하여 그 지방의 요새이다. 옛날에 행역(行役)나간 사람들이 모두 이 산에 올라 고향을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앵무의 원 서식지(棲息地)로 일컬어 온다.
농산[隴山] 중국 섬서성(陝西省) 농현(隴縣) 북서쪽에 있는 산으로, 북쪽 변방 지역을 뜻하는 말이다. 남조(南朝) 송(宋)의 육개(陸凱)가 강남에 있을 때 교분이 두터웠던 범엽(范曄)에게 매화 한 가지를 부치면서 “매화를 꺾다 역사를 만났기에, 농산의 그대에게 부친다오. 강남에는 있는 것이 없어, 봄소식 한 가지만 보낸다오.[折梅逢驛使, 寄與隴頭人. 江南無所有, 聊贈一枝春.]”라는 시를 함께 부친 고사가 있다. <古詩紀 卷64 贈范曄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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