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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언민행[訥言敏行]~눌여근인[訥如近仁]~눌지[訥祗]~눌최[訥催]


눌언민행[訥言敏行]  말은 더듬어도 실제의 행동은 민첩(敏捷)하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편에 “군자는, 언어에는 둔하여도 실천하는 데는 민첩해야 한다.[君子欲 訥於言 而敏行]”라는 구절이 있고, 논어 위정(爲政)편에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이야기를 하여도 어기지 않음이 못난이 같다.[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라는 구절이 있다.

눌여근인[訥如近仁]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강인하고 어눌한 것이 인에 가깝다.[剛毅木訥 近於仁]”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눌지[訥祗]  실성이사금은 사람을 보내 고구려에 있을 때 알던 사람을 비밀리에 불러 눌지를 보면 죽이라고 말한 뒤에 눌지에게 그 고구려 사람을 맞이하게 하였다. 고구려 사람은 눌지의 용모와 기상을 보고 “그대의 임금이 그대를 해치라고 했지만 지금 그대를 보니 차마 해칠 수 없다.”라고 하고는 돌아갔다. 눌지는 이를 원망하여 실성이사금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실성이사금은 재위 16년(417) 되던 해 5월에 죽었다. <三國史記 卷3 新羅本紀3 訥祇麻立干>

눌최[訥催]  신라 진평왕 때의 장군이며, 경주의 사량부(沙梁部) 출신이다. 대나마(大奈麻) 도비(都非)의 아들이다. 624년 10월 백제의 대군이 신라의 변경을 침범하여 속함(速含)・앵잠(櫻岑)・기잠(岐岑)・봉잠(烽岑)・기현(旗懸)・혈책(穴栅)의 6성을 포위하여 공격하니, 진평왕은 5군(軍)을 보내어 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5군의 장수들은 백제의 군진(軍陣)이 당당하여 그 예봉을 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에 백제군의 공격은 더욱 심해져 속함・기잠・혈책의 3성이 함락되었다. 이때 눌최는 나머지 3성을 병사들과 죽음으로써 지키다가 전사하였다. 진평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눌최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급찬(級飡)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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