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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多可]~다가[茶歌]~다강[茶綱]~다견궐태[多見闕殆]


다가[多可]  부드럽고 원만하게 처세하다. 성질이 꼼꼼하지 못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봐 주기 일쑤라는 말이다. 문선(文選)에 나오는 진(晉) 나라 혜강(嵇康)의 여산거원절교서(與山巨源絶交書 : 거원과 절교하는 글)에 “두루 달통하신 당신께서는 좋게 봐 주는 것은 많은 반면 괴이쩍게 여기는 경우는 드물기만 하다.[足下傍通 多可而少怪]”라고 하였다.

다가[茶歌]  옥천자(玉川子)는 당나라 시인 노동(盧仝)의 호인데, 그가 지은 다가(茶歌)에 “첫째 잔은 목과 입술을 적셔 주고, 둘째 잔은 외로운 시름을 떨쳐 주고,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를 더듬어서 뱃속엔 문자 오천 권만 남았을 뿐이요, 넷째 잔은 가벼운 땀을 흐르게 하여 평생에 불평스러운 일들을 모두 털구멍으로 흩어져 나가게 하네. 다섯째 잔은 기골을 맑게 해 주고, 여섯째 잔은 선령을 통하게 해 주고, 일곱째 잔은 다 마시기도 전에 또한 두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이는 걸 깨닫겠네.[一椀喉吻潤 二椀破孤悶 三碗搜枯腸 惟有文字五千卷 四椀發輕汗 平生不平事 盡向毛孔散 五椀肌骨淸 六椀通仙靈 七椀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라고 하였다.

다간요비궁[多艱要匪躬]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서 곤경을 허다히 겪었다는 말이다. 주역(周易) 건괘(蹇卦) 육이효(六二爻)에 “왕의 신하가 절뚝거리는 것은 그 신하 개인의 일 때문이 아니다[王臣蹇蹇 匪躬之故]”라는 말이 있다.

다감다정[多感多情]  정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함. 다정다감(多情多感).

다강[茶綱]  옛날 차에 대한 세금을 주관하여 거두던 관원이다.

다견궐태[多見闕殆]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이 벼슬하는 요령을 배우려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많이 듣되 의심난 것은 빼 버리고 나머지만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고, 많이 보되 불안한 것은 빼 버리고 나머지만 삼가서 행하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多聞闕疑, 愼信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爲政>

다견기부지량야[多見其不知量也]  ‘多’는 ‘祗’의 뜻이고 ‘不知量’은 자신의 역량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단지 헤아릴 줄 모르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단지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을 뿐이라는 뜻이다.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중니(仲尼)를 헐뜯자,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그러지 말라. 중니(仲尼)는 훼방할 수 없으니, 다른 어진 자는 구릉(丘陵)과 같아 오히려 넘을 수 있지만 중니는 해와 달과 같아 넘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끊고자 하나 어찌 해와 달에 손상이 되겠는가. 다만 자신의 분수를 알지 못함을 보일 뿐이다.’[叔孫武叔毁仲尼 子貢曰 無以爲也 仲尼不可毁也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 仲尼日月也 無得而踰焉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또, 후한(後漢) 주부(朱浮)의 위유주목여팽총서(爲幽州牧與彭寵書)에 “그대 팽총이 어찌하여 조그마한 어양 땅을 가지고 천자에게 원한을 품고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가. 이것은 비유컨대 바닷가에 사는 백성이 흙을 손에 쥐고서 맹진 나루를 메우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단지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것만 남에게 보여 주는 격이라고 할 것이다.[奈何以區區漁陽 而結怨天子 此猶河濱之民 捧土而塞孟津 多見其不知量也]”라고 한 데서도 보인다. <文選 卷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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