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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언미중[談言微中]~담여두대[膽如斗大]~담여수[淡如水]


담언미중[談言微中]  완곡(婉曲)하게 상대방(相對方)의 급소(急所)를 찌르는 말. 완곡한 말로 정곡(正鵠)을 찌름. 진(秦)나라에 우스운 이야기를 잘하는 우전(優氈)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키는 아주 작았지만, 그가 하는 우스운 말 가운데에는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도리(道理)가 들어 있었으므로 진시황(秦始皇)도 그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황궁에서 연회가 열렸는데 때마침 비가 내렸다. 비를 맞고 추위에 떨고선 병사를 보고 그가 말하길 “그대들은 키가 크지만 무슨 이익이 있는가? 나는 비록 키는 작지만 다행히도 안에서 쉬고 있으니 말이야.”라고 하였다. 이 소리에 진시황은 경비병을 절반씩 교대로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또 하루는 진시황이 사냥터를 넓혀 동쪽으로는 함곡관(函谷關)에서 서쪽으로는 옹(雍)과 진창(陳倉)까지 이르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우전이 간하였다. “좋습니다. 그곳에 많은 짐승을 놓아기르다 적군들이 동쪽에서 침범해 오면, 사슴들로 하여금 뿔로써 적을 막아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 진시황은 껄껄 웃고는 계획을 취소하였다. 사마천은 우전의 일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하늘의 도는 매우 넓으니 어찌 크지 않겠는가? 대화 중에 하는 말이 은연중에 맞으면 분란을 풀 수 있다.[天道恢恢, 豈不大哉. 談言微中, 亦可以解紛.]”라고 하였다. <사기史記 권126 골계열전滑稽列傳>

담여[紞如]  북을 두드리는 소리를 가리킨다. 진(晉)나라 때 청백리인 등유(鄧攸)가 일찍이 오군태수(吳郡太守)가 되었을 때, 양식을 싣고 부임하여 오직 그 땅의 물만 마실 뿐 한 톨의 녹봉도 받지 않은 채 선정을 베풀었다. 이 때문에 그가 떠날 때 수천 명의 백성들이 등유가 탄 배를 끌어당기며 출발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에 등유는 한밤중에 조각배를 타고 몰래 떠났는데, 오군의 백성들이 노래를 지어 부르기를 “둥둥 오경(更)의 북소리가 울리니, 닭 울음소리에 하늘이 밝아 오네. 등후는 끌어당겨도 머무르지 않고, 사령은 등 떠밀어도 떠나지 않네.[紞如打五鼓, 鷄鳴天欲曙. 鄧侯拖不留, 謝令推不去.]”라고 하였다. <晉書 卷90 良吏列傳 鄧攸>

담여두대[膽如斗大]  배짱이 한 말들이 말처럼 크다는 뜻으로, 배짱이 두둑하여 웬만한 일에는 끄덕도 하지 않음의 비유한다. 중국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대장군이었던 강유(姜維)가 제갈량(諸葛亮)의 뒤를 이어 아홉 차례나 중원(中原)을 공략하였는데, 나중에 그가 위(魏)나라에 잡혀 죽을 적에 배를 갈라 보니 쓸개가 말 만큼 컸다[維死時見剖 膽如斗大]는 기록이 전한다. <三國志 卷44 蜀志 姜維傳 註>

담여수[淡如水]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여 물과 같다는 뜻으로 군자의 마음씨를 형용하는 말이다. 예기(禮記) 표기(表記)에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과 같다. 군자는 담박함으로 이루고, 소인은 달콤함으로 무너뜨린다.[君子之接如水 小人之接如醴 君子淡以成 小人甘以壞]”라고 하였다. 후대에는 이를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가 단술과 같다.[君子之交淡如水 小人之交甘如醴]”라는 말로 자주 활용하였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23 人道部 交友> 장자(莊子) 산목(山木)에도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君子之交淡如水 小人之交甘若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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