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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망[曭莽]~당면착과[當面錯過]~당면토장[當面土牆]~당명황[唐明皇]


당막[棠幕]  감당(甘棠)의 막하(幕下)라는 뜻으로, 본래는 선정을 펴는 관청을 의미한다. 주(周)나라 소공 석(召公奭)이 남국(南國)을 순시하다가 팥배나무[甘棠] 밑에서 민원을 처리해 주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그를 사모하여 그 팥배나무를 차마 베지 못하였다. <詩經 甘棠>

당망[曭莽]  해가 빛이 없음을 이른다. 굴원(屈原)의 원유(遠遊)에 “때가 어두워 빛이 없으니, 현무를 불러서 어서 다르게 하고, 문창을 뒤로하여 따르게 하고서, 여러 신을 뽑아서 함께 달리게 하도다.[峕曖逮其曭莽兮, 召玄武而奔屬. 後文昌使掌行兮, 選署衆神以並轂.]”라고 한 데서 보인다.

당면수심배면소[當面輸心背面笑]  보는 앞에서는 따르는 척하다가 뒤에서는 헐뜯고 욕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 막상의행(莫相疑行)에 “늘그막에 젊은 친구와 사귀어 보려 하였더니, 얼굴 앞에선 마음을 주다가도 얼굴 돌리면 비웃는구나.[晩將末契託年少 當面輸心背面笑]”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4 莫相疑行>

당면착과[當面錯過]  눈앞에 두고 보면서도 잘못을 저지름을 이른다. 채근담(菜根譚)에 “인도의 대덕인 유마거사와 백정, 망나니의 마음이 본래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욕심에 가려져서 선한 본성이 닫힌다면 눈앞의 일을 그르쳐서 지척을 천리가 되도록 만든다.[維摩屠劊 無二心也 只是欲蔽性封 當面錯過 使咫尺千里矣]”라고 하였다.

당면토장[當面土牆]  눈앞을 막고 있는 담장. 장면(牆面)과 같은 말로 담을 대하고 있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고 한 물건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곧 학문을 하지 않아 식견이 없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회암집(晦庵集) 권10 차범석부제경복승개창운(次范碩夫題景福僧開窓韻)에 “어제 흙담에 얼굴을 대하고 섰다가, 오늘 아침 해를 향해 대나무 창문 열었네. 이 마음 도와 같이 막힘이 없다면, 밝고 어두움이 어찌하여 오고 가겠는가?[昨日土牆當面立, 今朝竹牖向陽開. 此心若道無通塞, 明暗如何有去來?]”라고 읊었다. 토장당면(土墻當面)은 이치를 몰라 담장을 마주하고 선 것처럼 앞이 캄캄한 것을 뜻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공자가 아들 백어(伯魚)에게 “너는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웠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바로 담장을 마주하고 선 것과 같다.[女爲周南召南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당명황[唐明皇]  당나라의 황제 이융기(李隆基)로, 명황제(明皇帝)는 시호이며 묘호는 현종(玄宗)이다. 예종(睿宗)의 셋째 아들로 9세에 임치군왕(臨淄郡王)에 봉해졌다. 26세 때 거병(擧兵)하여 중종(中宗)을 암살한 위황후(韋皇后) 세력을 제거한 뒤 부친을 황제로 옹립하고 자신은 태자가 되었다. 이후 태평공주(太平公主) 세력을 제압하고 28세에 예종의 양위로 즉위하였다. 재위 기간 전반에는 요숭(姚崇), 송경(宋璟), 장설(張說), 장구령(張九齡) 등 명재상을 등용하고 둔전제(屯田制)와 부병제(府兵制)를 확대하는 등 개원지치(開元之治)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천보(天寶) 연간으로 접어들면서 이임보(李林甫)를 재상으로 기용하고 실정(失政)을 거듭하면서 천보 14년에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다. 이듬해 안녹산(安祿山)의 난(亂)을 피해 파촉(巴蜀)으로 몽진(蒙塵)하는 길에 좌우(左右)의 요구로 인하여 마외역(馬嵬驛)에서 양 귀비(楊貴妃)를 죽였는데, 그때에 눈물을 흘렸다 한다. 같은 해에 태자 이형(李亨)이 즉위하여 숙종(肅宗)이 됨으로써 자신은 태상황(太上皇)이 되었다. 장안(長安)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쓸쓸한 노년을 보냈다.

당명황[唐明皇]  당(唐)나라 6대 황제인 당 현종(唐玄宗) 이융기(李隆基)의 별호이다. 현종(玄宗)은 시호가 지도대성대명효황제(至道大聖大明孝皇帝)라서 당명황(唐明皇)이라고도 부르는데, 청대(淸代) 강희제(康熙帝)의 이름이 현엽(玄燁)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현종 대신 당명황이라는 호칭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현종(玄宗)은 예종(睿宗)의 셋째아들이었는데 재주와 무략이 뛰어나, 중종(中宗)을 시해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황후 위씨(韋氏)를 토벌하고 그 공으로 예종(睿宗)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개원(開元) 연간에 요숭(姚崇), 장구령(張九齡) 등 뛰어난 재상들을 등용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중흥의 군주로 불렸다. 그러나 만년에 양귀비(楊貴妃)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고 이임보(李林甫), 양국충(楊國忠) 등 간신들로 하여금 국정을 전횡하게 하여 끝내는 천보(天寶)의 난(亂)을 불러들였다. <新唐書 玄宗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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