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當仁] 당인불양(當仁不讓)의 준말이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인을 행해야 할 때에는 스승에게도 사양하지 않는 법이다.[當仁不讓於師]”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당인[唐寅] 명(明)나라 때의 화가이자 문학가로, 자는 백호(伯虎)·자외(子畏), 호는 육여거사(六如居士)·도화암주(桃花庵主)·도선선리(逃禪仙吏) 등이다. 자칭 강남제일풍류재자(江南第一風流才子)라고 하였다.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오현(吳縣) 사람으로, 큰 규모로 상업을 하는 아버지 당광덕(唐廣德)과 어머니 구씨(邱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벼슬길이 순탄치 못하여 옥살이를 했으며, 한때 영왕(寧王) 주신호(朱宸濠)의 막하에 들기도 했으나, 그에게 모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서 벗어나 소주(蘇州)로 돌아온 뒤에는 벼슬에 대한 뜻을 접고 그림과 책을 벗삼아 지냈다. 성정이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몸 또한 자유롭게 지내기를 좋아했다. 축윤명(祝允明), 문징명(文徵明), 서정경(徐禎卿)과 함께 강남사대재자(江南四大才子)로 불렸고, 명대 미술사상 심석전(沈石田), 문징명(文徵明) 구영(仇英)과 함께 명사가(明四家) 혹은 오문사가(吳門四家)로 불린다. 문집으로 육여거사집(六如居士集)이 있고, 그림으로는 낙하고로도(落霞孤鷺圖)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이 있다.
당인[唐寅] 명(明)나라 중기의 문인화가로 글씨를 잘 썼으며, 산수화와 인물화에도 능하였다. 자는 백호(伯虎)였다가 나중에 자외(子畏)로 바꿨다. 호는 육여거사(六如居士), 도화암주(桃花庵主), 도선선리(逃禪仙吏), 노국당생(魯國唐生) 등을 썼다. 소주(蘇州) 오현(吳縣) 사람이다. 홍치(弘治) 11년(1498)에 향시에서 장원을 차지하며 문재를 떨쳤으나 이듬해 회시(會試)에서 부정사건에 연루되면서 급제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이후 영왕(寧王) 주신호(朱宸濠)의 막료가 되었으나 주신호에게 모반의 뜻이 있는 것을 알고는 벼슬에 대한 뜻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 서화에 전념했다. 산수화, 인물화, 화훼화(花卉畵)를 많이 그렸는데 산수화는 주신(周臣), 이당(李唐)에게 사숙하였고, 이곽파(李郭派)를 배웠으나 만년에는 오파(吳派)의 영향이 더해져 표현이 더욱 부드러워졌다. 시문으로는 문징명(文徵明), 축윤명(祝允明), 서정경(徐禎卿)과 함께 오중사재자(吳中四才子)로 불렸고, 그림으로는 심주(沈周), 문징명(文徵明), 구영(仇英)과 함께 명(明)나라 4대 화가로 불린다. 스스로 강남 제일의 풍류재사[江南第一風流才子]라 칭할 만큼 거침없이 방탕한 삶을 살았다. 대표작으로 금려별의도권(金閭別意圖卷) 등이 있고, 저서로 당백호전집(唐伯虎全集)이 있다.
당인[黨人] 정당(政黨)·당파(黨派)에 속(屬)하는 사람. 당원(黨員). 특(特)히, 관료(官僚) 출신(出身)의 당원(黨員)에 대(對)하여, 본디부터 정당(政黨) 내(內)에서 활동(活動)해온 사람을 가리킨다. 원우(元祐) 연간에 송(宋)나라 조정에는 낙당(洛黨), 삭당(朔黨), 촉당(蜀黨)의 세 당이 있어 이를 원우(元祐) 3당(黨)이라 하였는데, 낙당(洛黨)은 정이(程頤)를 추종하였고 삭당(朔黨)은 유지(劉贄)를 추종하였고 촉당(蜀黨)은 소식(蘇軾)을 추종하였다. 이들은 서로 대립하였는데 낙당(洛黨)과 촉당(蜀黨)의 갈등이 보다 심하였다. 또 이때 왕안석(王安石)의 신법당(新法黨)도 조정에 남아 있었다.
당인기소동[當因其所同]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10장에 “군자는 혈구의 도가 있다.[君子有絜矩之道也.]”라고 한 것에 대하여 주희(朱熹)가 해설하여 말하기를 “군자는 반드시 그 같은 바를 인하여 미루어 남을 헤아려서 피아(彼我)의 사이에 각각 알맞은 분수와 소원을 얻게 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상하와 사방이 고르고 방정하여 천하가 평안해질 것이다.[君子必當因其所同, 推以度物, 使彼我之間, 各得分願, 則上下四旁, 均齊方正, 而天下平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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