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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맞게 사람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산암잡록>


근대 우리 선문에는 상황에 맞게 방편을 쓰되 옛사람의 묵은 발자취를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기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불법을 구정(九鼎)보다도 무겁게 하신 탁월한 분들이 많았었는데, 지금 그러한 스님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항주 하천축사(下天竺寺) 봉산 의(鳳山儀)법사는 원대(元代) 연우(延祐) 초에 삼장 홍려경(三藏鴻臚卿)이라는 호를 하사받았으나 그 작록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법문중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바로 잡았다.

고려 부마(駙馬) 심왕(瀋王)이 황제의 칙명으로 보타관음(寶陀觀音)을 예배하러 가는 길에 항주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주머니 돈으로 명경사(明慶寺)를 찾아가 재를 올리고 많은 사찰의 주지를 위해 공양하였다. 성관(省官) 이하 여러 관아의 관리들이 직접 그 일을 감독하였으며, 서열을 정함에 있어서는 심왕을 강당의 중앙 법좌 위에 자리하고 모든 관리는 서열에 따라 법좌 위에 줄지어 앉고 사찰의 주지들은 양쪽 옆으로 앉게 하였다. 자리를 모두 안배한 후 법사는 맨 나중에 왔는데 오자마자 법좌 위로 달려가 왕에게 물었다.

“오늘의 재는 누구를 위한 재입니까?”

“많은 사찰의 주지를 공양하기 위함입니다.”

“대왕께서 많은 사찰의 주지를 공양하기 위함이라 말하고서도, 이제 주인의 자리는 없고 왕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아 모든 주지들을 양 옆으로 줄지어 앉히고 심지어는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자도 있으니, 이는 순라 도는 병졸들을 공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예법에는 이렇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황공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사과하고 곧장 법좌에서 내려와 많은 사찰의 주지에게 예의를 표한 후 손님과 주인의 자리를 나누어 모든 관리들은 양 옆의 주지가 앉았던 곳으로 물러나 앉았다. 공양이 끝난 후 왕은 법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법사가 아니었더라면 예의를 차리지 못할 뻔 하였습니다.”

아! 이른바 상황에 맞게 방편을 써서 사람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란 봉산법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산암잡록(山艤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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