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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소문은 모두 따질 게 못된다<산암잡록>


총림에 떠도는 소문은 모두 따질 만한 게 못된다. 후세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대혜(大慧)스님이 불지(佛智)스님과 함께 원오(圜悟)스님 문하에 있을 때 원오스님이 불지스님을 편애하여 대혜스님은 항상 그 점을 불평하였다고 한다. 뒤에 불지스님이 육왕사(育王寺)에 주지를 하다가 대혜스님이 그 자리를 이어 받았는데 물가에 있어서 좋지 않다는 핑계로 부도를 파헤쳐보니 그의 진신(眞身)이 그대로 있기에 큰 괭이로 그의 두개골을 쪼개 기름을 붓고 태웠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참혹한 일로서, 보통 사람들도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혜스님이 설마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내 일찍이 불지스님 부도탑의 비명을 읽어보니 불지스님은 사리를 봉안하였을 뿐 부도 속에 전신을 매장한 사실이 없었다.

또한 소옹(笑翁)스님이 육왕사의 주지로 있을 때 황폐한 사찰을 중수하는 일로 겨를이 없었는데, 때마침 천동사(天童寺) 주지자리가 비어서 도당성(都堂省)에서 황제의 뜻을 받들어 소옹스님을 천동사로 옮겨 임명하려고 하였다. 스님은 육왕사의 토목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여 임명을 없었던 것으로 해달라는 서신을 재상에게 올렸는데 그 서신 가운데, “천동사가 곧 육왕사이며, 육왕사가 곧 천동사이다”하는 구절이 있었다.

소옹스님은 엄격하여 규율을 범하는 승려가 있으면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그를 피했다. 그리고는 그가 천동사의 주지 임명을 사양하니 비방을 조장하여 결국은 “그가 십만 전으로 천동사의 주지를 샀다”는 말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를 전해 내려오면서 스님을 비난하는 구실로 삼고 있다.

나는 지난날 원나라 중기 지원(重紀 至元) 연간에 보복교사(普福敎寺)의 아 경문(雅景文)스님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경문스님이 소옹스님이 재상에게 올린 진필 서찰을 내보이기에 이를 보고서야 비로소 지난날의 비방이 거짓임을 증빙할 수 있었다. 또한 무문문집(無文文集)에 실려 있는 소옹스님의 행장(行狀)과 삼탑사(三塔寺)의 탑명을 읽어보니, 스님께서 천동사의 주지를 사양하는 서신의 뜻과 일치됨을 알게 되었다. 두분 스님의 도는 마치 하늘의 일월과도 같아 모두를 다 비춰주므로, 비록 말할 나위조차 없는 거짓된 비방이 스님을 더럽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가려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산암잡록(山艤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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