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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大曲]~대곡[代哭]~대곡리[大谷梨]~대곡서당[大谷書堂]


대곡[大曲]  고대의 가무 악곡의 한 형식이다. 한(漢)·위(魏) 때의 대곡은 ‘염’, ‘추’, ‘난’의 삼대단으로 짜여져 있으나 그 연창의 상황은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채옹(蔡邕)의 여훈(女訓), 송서(宋書) 등에 간략하게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당·송의 대곡은 궁정 연회 때에 상연되었던 대형의 악무로서, 송의 대곡은 당의 대곡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당의 대곡이 대부분 5·7언 시체인 반면, 송의 대곡은 장단이 같지 않은 사체이다. 그 변천의 원인은 송나라에 이르러 시보다도 사가 유행하였기 때문이다.

대곡[大谷]  가장 맛 좋은 배의 생산지로 전해지는 곳이다. 진(晉)나라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장공이 사는 대곡에서 생산되는 배 맛이요, 양나라 후가(侯家)의 감나무인 오비의 맛이로다.[張公大谷之梨 梁侯烏椑之柹]”라는 대목이 나온다. <文選 卷16>

대곡[代哭]  상주(喪主)가 몸이 심하게 훼상되는 것을 염려하여 다른 사람이 상주를 대신하여 곡하는 것이다.

대곡리[大谷梨]  아주 맛이 좋은 배를 이른다. 대곡(大谷)은 낙양(洛陽) 남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그곳에서는 좋은 배가 생산되기로 유명하다. 문선(文選) 권16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장공(張公)의 대곡의 배, 양후(陽侯)의 조비(鳥椑)의 감, 주 문왕(周文王)의 약지(弱枝)의 대추, 방릉(房陵) 주중(朱仲)의 오얏이 심어져 있지 않은 것이 없다.[張公大谷之梨, 梁侯烏椑之柿, 周文弱枝之棗, 房陵朱仲之李, 靡不畢殖.]”라고 하였는데, 그에 대한 유량(劉良)의 주(注)에 “낙양에 장공이 있어 대곡에 살았다. 그 집에는 하리(夏梨)가 있는데, 천하에서 오직 이 한 나무만이 있다.[張公居大谷, 有夏梨, 海內唯此一樹.]”라고 하였다.

대곡사[大谷寺]  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에 있는 절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예천군 비봉산(飛鳳山)에 있던 절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대곡서당[大谷書堂]  나주 금성산(錦城山) 기슭에 있는 서원으로 문경공(文敬公)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문정공(文正公)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문원공(文元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문순공(文純公) 퇴계(退溪) 이황(李滉) 등 오현(五賢)을 향사(享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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