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작부등고지[大夫作賦登高地] 높은 곳에 올라서 시를 잘 읊는 것은 고대 대부(大夫)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재능[九能] 중 하나이다. 성어(成語)로 능부등고(能賦登高), 또는 등고필부(登高必賦)라 한다. 한서(漢書) 권30 예문지(藝文志)에 “전에 이르기를 ‘노래하지 않고 읊는 것을 부라고 한다. 높은 데에 올라가서는 시를 읊을 줄 알아야 대부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傳曰 不歌而誦謂之賦 登高能賦可以爲大夫]’라고 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전(傳)은 시경(詩經) 용풍(鄘風) 정지방중(定之方中)의 복운기길(卜云其吉)을 해설한 모전(毛傳)을 가리킨다. 또 한시외전(韓詩外傳) 권7에 공자(孔子)가 경산(景山)에 올라가 노닐 적에 자로(子路)와 자공(子貢)과 안연(顔淵)이 시종(侍從)하였는데, 공자가 그들에게 “군자는 높은 데에 올라가면 시를 읊어 소회를 토로하는 법이다. 너희들이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각자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내가 너희들에게 한마디씩 일러주리라.[君子登高必賦 小子願者何 言其願 丘將啓汝]”라고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참고로, 왕안석(王安石) 시에 “믿을 줄 아는 것이 대부의 재능이요, 부를 잘 짓는 것은 높은 곳에 오르는데 있다.[信知大夫才 能賦在登高]”라는 글귀가 있다.
대부종[大夫種] 월(越)나라 대부(大夫) 문종(文種)으로, 자(字)는 자금(子禽), 소금(少禽)으로도 쓴다. 본래 초(楚)나라 영(郢) 땅 출신인데 월(越)나라에 등용되어 대부(大夫)가 되었다. 구천(句踐)의 중요한 모신(謀臣) 중의 한 사람이었다. 뛰어난 정치력으로 범려(范蠡)와 함께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보필하여 오(吳)나라와의 전쟁으로 멸망 직전에 몰린 월(越)나라를 구하고, 끝내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패망시켜 회계(會稽)의 치욕을 설욕하고, 구천(句踐)을 패자(霸者)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구천(句踐)의 곁을 떠나라는 범려(范蠡)의 권유를 듣지 않고 월(越)나라에 남아 있다가, 의심이 많은 구천(句踐)이 참언(讒言)을 믿고 검(劍)을 내리자 자결하였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越絶書>
대부지책[大夫之簀] 대부의 자리[簀].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증자(曾子)가 병이 있어 앓아누웠다. 증자의 제자 악정자춘(樂正子春)는 침상 아래에 앉았고, 증자의 아들 증원(曾元)과 증신(曾申)이 발밑에 앉아 있었다. 동자(童子)가 구석에 앉아 등불을 잡고 있었다. 동자(童子)가 말하기를 ‘화려하고 고우니 대부가 사용하는 대자리일 것입니다.[華而睆 大夫之簀與]’라고 하자, 악정 자춘(樂正子春)이 말하기를 ‘그만 말하라.’라고 하였다. 증자가 듣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하고 탄식하였다. 동자가 말하기를 ‘화려하고 고우니 대부가 사용하는 대자리일 것입니다.’라고 하자, 증자가 말하기를 ‘그러하다. 이는 계손씨(季孫氏)가 준 것인데 내가 바꾸지 못하였으니, 증원(曾元)은 일어나 대자리를 바꾸라.’라고 하였다. 증원이 대답하기를 ‘부자의 병이 심하여 바꿀 수가 없으니, 바라건대 내일 아침이 되면 공경히 바꾸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증자가 말하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저 동자만도 못하구나. 군자가 사람을 사랑함은 덕으로써 하고 소인이 사람을 사랑함은 고식(姑息)으로써 하니, 내 무엇을 바라겠는가? 내 바름을 얻고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몸을 들어 부축하여 자리를 바꾸었는데, 자리로 돌아와 편안해지기도 전에 별세하였다.[曾子寢疾, 病. 樂正子春坐於床下, 曾元·曾申坐於足, 童子隅坐而執燭. 童子曰: 「華而睆, 大夫之簀與?」 子春曰: 「止!」 曾子聞之, 瞿然曰: 「呼!」 曰: 「華而睆, 大夫之簀與?」 曾子曰: 「然, 斯季孫之賜也, 我未之能易也. 元, 起易簀.」 曾元曰: 「夫子之病帮矣, 不可以變, 幸而至於旦, 請敬易之.」 曾子曰: 「爾之愛我也不如彼. 君子之愛人也以德, 細人之愛人也以姑息. 吾何求哉? 吾得正而斃焉斯已矣.」 舉扶而易之. 反席未安而沒.]”라고 하였다.
대부지후[大夫之後] 대부지후(大夫之後)는 겸양의 말로, 대부(大夫)의 반열에 있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선진(先秦)에 “내가 도보로 걸어 다니며 수레를 팔아 곽(槨)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은, 내가 대부의 반열 뒤쪽이나마 있기 때문에 도보로 걸어 다닐 수 없어서이다.[吾不徒行以爲之槨 以吾從大夫之後 不可徒行也]”라는 구절이 있다.
대부책[大夫簀] 책(簀)은 자리와 같은 물건이다. 증자(曾子)가 병이 위독할 때에 자기가 깔고 누운 대자리에 대해서, 동자가 “아름답고 곱구나. 대부가 사용하는 돗자리여.[華而睆 大夫之簀與]”라면서 예제(禮制)에 합당하지 못하다고 은근히 비판하는 말을 듣고는, 자기 아들에게 다른 것으로 교체하게 하자, 아들이 지금은 위독하니 다음에 바꾸어 드리겠다고 대답하였으나, 증자가 “나는 바른 도리를 얻고서 죽으면 그뿐이다.[吾得正而斃焉斯已矣]”라면서 다그치니, 여러 사람이 증자를 부축하여 자리를 바꾸었는데, 그 사이에 증자가 임종(臨終)하였다는 역책(易簀)의 고사가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보인다.
대부환[大夫環] 귀양에서 풀려나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에 대부(大夫)가 임금에게 죄를 얻고 국경에서 처분을 기다릴 때, 임금이 둥근 옥고리인 환(環)을 주면 그것은 돌아오라는 뜻이었는데, 환(環)과 환(還)의 음이 같기 때문에 이렇게 하였다고 한다. 또 한쪽이 일그러진 옥고리인 결(玦)을 주면 조정에서 떠나가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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