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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송[大夫松]~대부승[大斧僧]~대부월[代斧鉞]~대부인[大夫人]


대부성[大夫醒]  대부는 곧 전국 시대 초 회왕(楚懷王)의 충신으로 일찍이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낸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굴원이 소인들의 참소를 입어 조정으로부터 쫓겨나 택반(澤畔)을 읊조리며 다닐 적에 어부사(漁父辭)를 지었던바, 그 어부사(漁夫詞)에 의하면, 어부가 굴원의 초췌한 몰골을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닌가,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라고 하자, 굴원이 말하기를 “온 세상이 다 탁하거늘 나 홀로 맑고, 온 세상이 다 취했거늘 나 홀로 깨었는지라, 이 때문에 내가 추방되었노라.[擧世皆濁, 我獨淸, 擧世皆醉, 我獨醒. 是以見放.]”라고 하였다는 데서 온 말이다. <楚辭 漁父辭>

대부송[大夫松]  진시황(秦始皇)이 태산에 올라가 봉선(封禪)의 제사를 올리고 나서 홀연히 폭풍우를 만나자 소나무 아래로 피했는데, 그 소나무가 공을 세웠다고 하여 오대부(五大夫)의 작위를 내려 봉했다는 대부송(大夫松)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대부승[大斧僧]  고려 인종 13년(1135)에 묘청(妙淸), 유참(柳旵), 서경분사 시랑(西京分司侍郞) 조광(趙匡) 등이 반역을 도모하였는데, 조광은 평서원수(平西元帥) 김부식(金富軾)의 조유문(詔諭文)에 회유되어 묘청(妙淸)과 유참(柳旵)의 머리를 베어와 투항하려고 하다가, 조정의 조치를 믿을 수 없게 되자 다시 변심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김부식(金富軾)이, 후군(後軍)이 숫자가 적고 약한 것을 염려하여 밤에 몰래 보병과 기병(騎兵) 1천 명을 보내서 보태 주었다. 새벽에 적들이 마탄(馬灘)과 자포(紫浦)를 건너 곧바로 후군을 치고 들어와 병영을 불태우고 돌진해 왔다. 중 관선(冠宣)이 모집에 응하여 종군(從軍)하여 큰 도끼[大斧]를 메고 먼저 나가 적을 공격하여 10여 명을 죽였다. 관군(官軍)이 승세를 타고 크게 쳐부수어, 300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적들이 모두 유린되어 강으로 도망치다가 빠져 죽었다. 노획한 병선(兵船)과 무기가 매우 많았고, 적들의 형세가 꺾였다. 적들이 밤에 군사를 삼등분하여 전군(前軍) 진영을 공격해 왔다. 김부식이 중 상숭(尙崇)에게 도끼를 메고 적을 맞아 공격하게 하였다. 10여 명을 죽이니, 적병이 달아나 흩어졌다. 장군 우방재(于邦宰)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추격하자, 적들이 무기를 버리고 성으로 들어갔다.

대부월[代斧鉞]  부월을 대신함. 천하 사람들이 의론하는 것을 이른다. 서경(書經) 반경(盤庚)의 “이제 내가 이미 나아가 나의 뜻을 너희에게 고하였으니, 내 뜻과 같이하고 같이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공경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今我旣羞告爾于朕志 若否 罔有弗欽]”라는 구절에 대한 송(宋)나라 소식(蘇軾)의 주에 “백성들이 원망하고 비방하며 명령을 거역하였으나, 반경은 끝내 노여워하지 않고 허물을 이끌어 자책하여 사람들의 말을 더욱 열어주고 반복하여 고유(告諭)해 입과 혀로써 부월을 대신하였다.[民怨誹逆命 而盤庚終不怒 引咎自責 益開衆言 反復告諭 以口舌代斧鉞]”라는 내용이 보인다. <書集傳 盤庚下 蔡沈注>

대부유천[大富由天]  명심보감(明心寶鑑)에 “큰 부자는 하늘에 인하고, 작은 부자는 부지런한 데에서 온다.[大富由天, 小富在勤.]”라고 하였다.

대부인[大夫人]  살아 계신 남의 어머니의 경칭(敬稱). 모당(母堂). 모부인(母夫人). 천자(天子)를 낳은 부인(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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