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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풍이[大樹馮異], 대수필[大手筆], 대수하무미초[大樹下無美草]


대수풍이[大樹馮異]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공신(功臣)으로 대수장군(大樹將軍)으로 일컬어진 풍이(馮異)를 이른다. 맹진장군(孟津將軍)이 되어 양하후(陽夏侯)로 추봉(推封)되었다. 통감절요(通鑑節要) 동한기(東漢紀)에 “유수(劉秀)가 관리와 병졸들을 나누어서 각각 제군(諸軍)에 예속시킬 때에 군사들이 모두 말하기를 ‘대수장군(大樹將軍)에게 소속되기를 원한다.’라고 하니, 대수장군(大樹將軍)은 편장군(偏將軍) 풍이(馮異)였다. 사람됨이 겸손하고 공로를 자랑하지 않아서 관리와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적과 교전하거나 적의 침공을 받은 경우가 아니면 항상 여러 군영의 뒤에 있게 하고, 매번 머무는 곳에서 제장(諸將)들이 함께 공(功)을 논하면 풍이(馮異)는 항상 홀로 나무 아래로 물러가 있었다. 그러므로 군중에서 그를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 불렀다.[秀部分吏卒, 各隷諸軍, 士皆言願屬大樹將軍. 大樹將軍者, 偏將軍馮異也, 為人謙退不伐, 敕吏士非交戰受敵, 常行諸營之後. 每所止舍, 諸將並坐論功, 異常獨屏樹下, 故軍中號曰大樹將軍.]”라고 하였다. 전공을 세우고도 논공행상(論功行賞)하는 대열에 끼지 않고 뒤에서 기다린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대수필[大手筆]  당(唐)나라 때에 연국공(燕國公) 장열(張說)과 허국공(許國公) 소정(蘇頲)이 조칙(詔勅)의 문장(文章)을 잘 지었으므로 대수필(大手筆)이라 칭하였다.

대수필[大手筆]  문장이 출중한 사람 또는 대저작(大著作)을 뜻한다. 진서(晉書) 권65 왕순열전(王珣列傳)에 “왕순이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서까래만 한 큰 붓을 주는 꿈을 꾸었는데, 깨어난 뒤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큰 붓으로 글 쓸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얼마 뒤 황제가 붕어하여 애책문(哀冊文)과 시의(諡議)를 모두 왕순이 기초(起草)하였다.[珣夢人以大筆如椽與之, 既覺, 語人云: 此當有大手筆事. 俄而帝崩, 哀冊諡議, 皆珣所草.]”라고 한 고사가 전한다. 후에 이로 인해 문학적 재능이 걸출한 것을 몽필(夢筆)이라 하고, 필력이 웅건한 것을 연필(椽筆) 또는 대필여연(大筆如椽)이라 하였다.

대수하무미초[大樹下無美草]  현자(賢者)의 승진(昇進)길이 가리워지고 막히는 곳에는 재사(才士)가 나오지 않음에 비유한 말이다. 설원(說苑) 권16 담총(談叢)에 “높은 산마루에 좋은 나무가 없는 것은 너무 많은 햇볕에 해를 입었기 때문이고, 큰 나무 밑에 좋은 풀이 없는 것은 너무 많은 그늘에 해를 입었기 때문이다.[高山之巔無美木, 傷於多陽也 ; 大樹之下無美草, 傷於多蔭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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