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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오[大奧]~대오금무어[臺烏噤無語]~대옥[臺獄]~대옹[戴顒]~대옹[大甕]


대오[大奧]  우주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네 가지 근본 요소를 가리킨다. 사대(四大)도 동일한 내용을 의미한다.

대오[戴鰲]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발해(渤海)의 동쪽에 깊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대여(岱輿)·원교(員嶠)·방호(方壺)·영주(瀛洲)·봉래(蓬萊) 등 다섯 개의 산이 있는데, 신선이 사는 곳이다. 그 산들이 모두 바다에 떠 있어 항상 조수에 따라 왕래하였으므로 상제(上帝)가 그 산들이 서쪽으로 떠내려가 신선들이 거처를 잃게 될까 염려하여 우강(禺彊)에게 명하여 큰 거북 여섯 마리로 하여금 번갈아 산을 떠받치도록 하였는데, 그 뒤 비로소 다섯 개 산이 우뚝 솟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용백국(龍伯國)의 어떤 대인(大人)이 몇 걸음 정도 발을 떼자 다섯 개 산에까지 닿아 단 한 번에 여섯 마리의 거북을 낚아 가지고 돌아가 갑골(甲骨)을 불로 지졌다. 이에 대여, 원교 두 산은 북극으로 떠내려가 대해(大海) 속에 가라앉아 버렸으므로 수많은 신선들이 떠돌아다녔다.”라고 하였다.

대오각성[大悟覺醒]  진실을 길이 깨닫고 올바르게 정신을 가다듬는다는 말이다.

대오금무어[臺烏噤無語]  헌납(獻納)으로 있으면서 어떠한 직언도 않고 입을 닫고 있는 자신을 비유한 표현이다. 오대(烏臺)는 사헌부의 별칭이다. 한(漢)나라 어사부(御史府)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잣나무 위에 항상 수천 마리의 까마귀가 모여 와 앉아 떠들어대다가 날아가곤 하였다는 고사 때문에 사간원을 흔히 오대(烏臺)라고 한다. 옛날 증공량(曾公亮)이 나이가 많아 정무를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중서성(中書省) 벼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비난하는 대간(臺諫)이 아무도 없었다. 이에 이복규(李復圭)가 시를 지어 “늙은 봉황이 못가에 웅크리고 앉아 떠나지 않건만, 굶주린 까마귀는 대 위에서 아무 말이 없구나.[老鳳池邊蹲不去 飢烏臺上噤無聲]”라고 조롱하였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卷32 老鳳不去>

대옥[大玉]  대옥은 화산(華山)에서 나오는 미옥(美玉)이다.

대옥[臺獄]  어사대(御史臺)의 옥(獄)을 가리킨다. 어사대(御史臺)는 중앙감찰기관으로, 소식(蘇軾)은 원풍(元豐) 2년(1079) 7월에 어사대(御史臺) 관리인 황보준(皇甫遵)에게 체포되어 어사대(御史臺)에 투옥되었다.

대옹[戴顒]  남조(南朝) 때 송(宋)나라의 금가(琴家)이다. 부친 대규(戴逵)와 형 대발(戴勃)도 금(琴)의 대가였다. 대옹(戴顒)이 어느 봄날 감귤 두 개와 술 한 말을 싣고 나가기에 어떤 사람이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가서 꾀꼬리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 소리는 속인의 귀를 일깨우고 시심을 고취시켜 주는데, 그대는 그걸 아는가.[往聽黃鸝聲 此俗耳針砭 詩腸鼓吹 汝知之乎]”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雲仙雜記 卷2>

대옹[戴顒]  남조(南朝) 송(宋) 나라 사람이다. 자기 형 발(勃)과 함께 동려(桐廬)에 숨어살았는데, 대단한 명망이 있었다. 자기 형이 죽자 동려를 떠나 오하(吳下)에 와 놀았는데 그곳 선비들이 옹을 위해 살 집을 마련해 주었다. <宋書 卷九十三>

대옹[戴顒]  대규(戴逵)의 아들이다.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벼슬하지 않고 음율(音律)에 능했으며 국가에서 누차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南史 卷七十五>

대옹[大甕]  대옹은 유락(乳酪)을 담는 항아리인 낙옹(酪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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